[백승현의 시각] "3만원 줄게, 일자리 지켜다오"
“영세 사업주의 어려운 경영 여건과 저임금 근로자의 고용 안정 필요성을 고려해 일자리안정자금을 지원하겠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8월 31일 국무회의에 보고한 2022년도 예산안 내용 중 일부다. 당초 올해를 끝으로 종료할 예정이었던 일자리안정자금 사업을 내년에도 계속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관련 예산은 약 5000억원. 경기회복을 고려해 내년에는 6개월만 지원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내년에도 일자리안정자금 사업

일자리안정자금은 2018년 최저임금이 한꺼번에 16.4% 오르면서 정부가 내놓은 사업이다. 근로자 30인 미만 사업장과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사업주에게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는 것으로, 2018년과 2019년에는 근로자 1인당 월 최대 13만원이 지원됐다. 2019년에도 전년에 이어 최저임금을 10.9%나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20년과 2021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각각 2.9%, 1.5%에 그치면서 지원금도 각각 9만원, 5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올해를 포함해 지난 4년간 일자리안정자금으로 편성된 예산은 10조원에 육박한다. 내년 예산안을 감안하면 이 사업에만 10조원이 넘는 세금이 들어가는 셈이다.

당초 정부는 2018년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려 “자영업자들에게 ‘병(病)’을 앓게 해놓고 ‘약(藥)’이랍시며 일자리안정자금을 뿌린다”는 비판이 일자 ‘한시사업’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안경덕 고용부 장관도 지난 7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해 “기획재정부에 넘긴 내년 고용부 예산요구안에는 일자리안정자금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달여 뒤 국무회의에는 일자리안정자금 5000억원이 포함된 예산안이 제출됐다.

7월 장관의 발언 이후 한 달여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각에서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자리안정자금 사업을 폐지했다가는 코로나19 방역지침 등으로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600만 자영업자의 분노를 살 수 있다는 ‘보이지 않는 손’의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어찌 됐건 내년에도 영세 소상공인들에게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은 계속된다. 문제는 지원 수준이다.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대상이 200만 명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5000억원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은 1인당 월 2만원 수준이다. 정부 계획대로 6개월만 지원한다고 해도 월 최대 3만원 정도일 것이라는 게 국회 환노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상당수의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은 폐업을 고민하는 처지다. 여기에 내년에는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05%(주 40시간 근로자 기준 월 9만1960원) 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자 1인당 월 3만원을 줄 테니 고용을 유지하라는 게 일자리안정자금이라는 사업의 실체다.

정책효과 없이 5000억 날릴판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 총 다섯 차례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초반 2년간은 무려 29%를 올렸지만 이내 역풍을 맞았고, 결국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5년간 연평균 인상률은 7.2% 수준에 그쳤다. 즉 최저임금 인상률이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고 집권 기간에 매년 7~8%씩 올렸다면 일자리안정자금 사업도 필요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책 실패로 막대한 세금이 날아갔지만 지금이라도 일자리안정자금 사업은 접는 게 맞다. 월 3만원을 주면 고용을 유지할 것이라는 무모한 기대도 역시 접는 게 맞다. 차라리 그 5000억원을 재원이 없어 쩔쩔매는 소상공인 손실 보상에 활용하는 게 그나마 낫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