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다시 뜨는 '코리아타운'

1993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폴링 다운(Falling Down)’은 미국 백인의 시선에서 인종주의 원인을 찾는다. 도로 체증에서 비롯된 주인공의 스트레스는 마침 들른 한인 상점 주인의 서툰 영어와 장삿속만 밝히는 모습에 분노로 폭발한다. 한인에 대한 흑인의 시기와 질투도 심했다. 경찰에 의한 흑인 구타 사망으로 불붙은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 때 코리아타운 내 2300여 개 한인 상점이 약탈당하고 전소된 곳도 부지기수였다. 지금이야 ‘코리안 BBQ’ ‘빙수’ ‘찜질방’ ‘노래방’ ‘소주’ ‘코리안 스킨케어’ 등이 인기지만, 미국 내 코리아타운은 적지 않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9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하워드 카운티에서 코리아타운(엘리콧시티 일대 약 8㎞ 거리)이 공식 개장했다는 소식은 그런 점에서 무척 반갑다. 2년 전 지정 이후 한국형 기와를 올린 2개 조형물 제작과 모금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한국계 유미 호건 여사를 부인으로 둔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가 ‘한국 사위’로 불리는 점도 한몫했겠지만,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재외 한인 750만 시대에도 현지 정부에 의해 코리아타운으로 공식 지정된 경우는 LA나 중국 선양 서탑, 브라질 봉헤치로 정도로 흔치 않은 게 사실이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도 2014년 지정 법안 발의가 반대에 부딪혔다. 다른 민족 출신과의 단결을 해치고 형평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점에서 코리아타운이 단순한 집단 거주지·상권 이상으로 공식 지정받고, 한국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하려면 현지 사회와 소통하고 개방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뉴욕 맨해튼의 ‘코리안 아메리칸 퓨전식당’이 좋은 예다. 마침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한 K팝과 ‘오징어 게임’으로 대변되는 K드라마 등 한류 인기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영화 ‘미나리’의 오스카상 수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인사회에 대한 미국 주류사회 인식도 한결 개선되고 있다. 문화의 힘, 소프트파워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껴진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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