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기시다 정권 출범과 일본 정치의 낙후성
일본에서 제100대 총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이 출범했다. 지난달 29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 따른 결과다. 일본은 여당 야당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여당인 자민당 총재가 바뀌고 그 총재가 새 총리가 돼 정권이 교체되는 특이한 나라다. 공산당 국가가 아님에도 1955년 창당된 자민당이라는 하나의 정당이 60년 이상을 여당으로 군림해 온 나라도 일본이 유일하다.

집권당이 바뀌는 다른 선진 국가의 보편적인 정권 교체에 비춰 보면 일본 정치는 꽤나 뒤처져 있다. 그 배경에는 일본 국민의 정치의식 결여가 있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출에서도 정치 낙후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파벌의 흑막이 총재를 결정짓고 당원들의 의사가 무시됐다는 점에서다.

특히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파벌 정략이 두드러졌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는 기시다 후미오, 고노 다로, 다카이치 사나에, 노다 세이코 등 4명이 입후보했고, 아베는 고노를 밀고 있었던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과 정적(政敵) 관계였다. 고노를 떨어뜨려 정적의 부상을 배제하고 자신의 임기 중 의혹들(‘모리토모 학원’으로의 국유지 헐값 불하, 지지단체 회원을 공금으로 개최된 ‘벚꽃을 보는 모임’에 초대한 문제)을 덮을 심산으로 파벌을 이용했다.

아베는 다카이치를 내세워 뒤에서 조정했고, 결국 1차 투표에서 누구도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1차 투표 득표율은 기시다 33.6%, 고노 33.5%, 다카이치 24.7%였다. 아베는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대 파벌 호소다파(96명)를 움직여 결선 투표에서 기시다를 밀게 했고, 기시다 60.2%, 고노 39.8%의 득표율로 기시다가 총재로 선출됐다.

정치 세계에서 권모술수 난무는 그러려니 하며 넘길 수 있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민의(民意)의 배제다.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리던 고노가 파벌 간 권력 투쟁에서 가차 없이 나가떨어졌다. 결선 투표에서 기시다는 도도부현 당원표 47표 중 8표를 얻는 데 그쳤지만, 국회의원표는 380표 중 249표나 차지했다. 당원의 민의가 배제되고 노골적인 파벌 정략으로 기시다 쪽에 몰표가 쏟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은 끝장 토론이나 논쟁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을 꺼려한다. 확 바꾸는 개혁보다는 안정된 틀 안에서 약간씩 변화를 주며 안정감을 얻으려 한다. 정치에서도 여당과 대립하는 야당을 지지하기보다 전통 있는 여당을 지지하면서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는 쪽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당내에서 세력을 확보하려는 파벌이 형성되고, 민의가 배제되며 파벌의 이해관계에 놀아나는 낙후성을 드러낸다.

일본 정치의 낙후성 뒤에는 자신의 의사가 무산됐다고 해도 큰소리를 내지 못하는 국민들이 있다. 일본 의회정치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는 1947년 《민주정치독본》에서 ‘일본병’으로 ‘노예근성’을 말하고 있다. 노예근성이라함은 “누군가가 어떻게든 해 줄 것이라며 오로지 타인의 힘에 의존해 구제받으려 하고, 스스로 자신을 구제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는 근성”을 말한다(p62).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와 기시다 정권 출범은 일본인의 ‘노예근성’을 정치인들이 ‘파벌 정략’으로 이용했음을 보여준 일막이었다. “민의가 경시됐다”는 목소리는 반향을 얻지 못했고 비민주적 파벌 독주를 막지 못한 한계를 노정시켰다. 노예근성이 이어지고 파벌 정략이 기승하는 한 일본의 정치 낙후성은 계속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