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상이 결선 투표 끝에 일본의 100번째 총리로 선출됐다. 이웃 국가의 새로운 리더십 부상은 기대와 흥분을 안겨주는 정치 이벤트이지만, 이번만큼은 복잡미묘한 심정이 앞선다. 꼬일 대로 꼬인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막중한 임무가 두 나라 앞에 놓여 있어서다.

이번 총리 선거의 핵심 쟁점은 ‘아베 노선’의 유지 여부였다. ‘아베와의 거리두기’와 ‘자민당 개혁’을 앞세운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상에 맞서, 기시다는 큰 틀에서 ‘아베 계승’ 쪽에 무게를 실었다. 기시다의 일본이 당분간 ‘일본 우익정치의 정점’으로 불리는 아베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한·일 관계의 가시적 변화라는 과제에 적잖은 부담이다.

위안부와 징용 문제에 대한 해법도 만만치 않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 외무상이었던 기시다는 “일본은 위안부 합의를 모두 이행했으며 공은 한국에 있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이 국제법 등을 지키지 않는다면 미래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더구나 엊그제 대전지방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자산매각 명령을 내렸다. 총리가 바뀌어도 자칫 한·일 갈등이 정점으로 치달을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긍정적인 대목도 적지 않다. 기시다는 “대화는 필요하다”며 한국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안정감 있는 온건파’인 점도 극단적 대치가 아니라 대화국면 조성에 유리한 변수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강조하는 경제정책은 문재인 정부와의 공감대를 찾을 수도 있다.

국내 여론도 바뀌고 있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다소 높아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최근 발표되기도 했다. 관계 개선이 지연되면 ‘반일 장사’ ‘혐한 장사’로 표를 노리는 정치인 말고는 양국 국민과 기업 모두에게 손해다. 새 일본 총리 선출을 계기로 국익을 해치는 저급한 정치에서 탈피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