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값이 급등하면서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전력난을 부르고, 이것이 다시 ‘공급난→인플레이션→금리 상승’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각각 3년, 7년 만에 최고치로 오른 이유는 에너지 수요가 코로나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한 반면 공급은 이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멕시코만을 강타한 허리케인 영향으로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이 모두 급감한 데다 유럽 천연가스 소비량의 절반을 담당하는 러시아가 공급을 늘리지 않음에 따라 가격 급등세가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국제유가가 북반구가 겨울에 들어서는 연말에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이 같은 상황 전개는 원자력을 제외할 경우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0%를 넘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에너지 수입국’에는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이 곧바로 국내 경제 충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전체 발전량의 60%가량을 석탄에 의존하는 중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중단하면서 최근 심각한 전력난을 겪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가격 급등과 아일랜드의 풍력발전량 급감으로 전기요금이 치솟은 유럽 각국 사정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수입국엔 곳곳이 암초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교훈은 재생에너지가 아직까지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풍력·태양광 발전을 늘려왔지만 이번 유럽 전력대란과 지난 2월 텍사스 대정전에서 보듯이 재생에너지 한계는 분명하다. 지난해 국내 에너지원(源)별 발전비중만 봐도 석탄 35.6%, 원자력 29.0%, 액화천연가스 26.4%, 재생에너지 6.6%, 기타 1.4% 등으로 화석연료가 여전히 60%를 넘는다.

한 나라의 에너지 수급은 고차원의 복합 방정식과도 같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국내에선 숱한 변수들을 무시한 채 ‘탈(脫)원전’을 무슨 종교처럼 떠받들며 밀어붙여 왔다. 원전은 에너지 자급과 탄소중립을 위해서, 그리고 화석연료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무턱대고 이를 줄이고 배척한 결과 벌써 대(對)국민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다. 8년간 동결됐던 전기료가 내달부터 오르는 데 이어, 도시가스 요금도 조만간 인상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탈원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