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누군가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
하지만 그는 껄껄 웃으면서 대답했어.
“그럴지도 모르죠.”
스스로 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
그는 싱긋 웃으며 덤벼들었지.
걱정하는 기색조차 없었어.
노래를 부르며 남들이 할 수 없다던 일과 씨름했고,
결국 그 일을 해냈지.

누군가 비웃었어.
“아무도 한 적이 없는 일을 네가 한다고?”
하지만 그는 모자와 웃통을 벗어던졌지.
그리고 시작했어.
턱을 치켜들고 미소를 지으며,
어떤 의심도 변명도 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면서 할 수 없다는 그 일과 씨름했고
결국 그 일을 해냈지.

수많은 사람이 말하지. 그 일은 불가능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예언해.
그들은 또 말하지.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하지만 활짝 웃으며 덤벼들어 봐.
소매를 걷어붙이고 달려들어 봐.
노래를 부르면서 불가능하다는 그 일과 씨름해 봐.
결국은 해낼 테니까.


*에드거 게스트(1881~1959) : 미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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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의 아침 시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비결

이 시를 읽으면 용기가 솟아오릅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힘! 삶을 대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됩니다. 여차하면 핑계를 대며 일을 피하려는 사람과 남이 비웃을지라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의 미래는 확연히 다르지요. 어떤 의심이나 변명도 없이 ‘불가능하다는 그 일’에 달려들 때 우리는 ‘결국 해낼’ 수 있습니다.
대공황으로 40세에 빈털터리가 되고
여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890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생길이 시작됐죠. 어머니가 일하러 나간 뒤 그는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일곱 살짜리 소년은 음식 만드는 법을 혼자 배웠고, 열 살 때부터는 농장에서 막노동을 했습니다. 열두 살 때 어머니마저 재혼해 떠난 뒤로는 초등학교마저 중퇴해야 했지요.

이후 증기선 선원부터 농부, 보험판매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16세 때 군에 입대해 쿠바로 파견되어서는 낯선 땅의 이방인으로 지냈지요. 제대 후 철도노동자와 보험설계사, 주유소 일까지 온갖 경험을 다 했습니다. 가난했지만 결혼도 하고 아이도 얻었지요.

그러나 대공황의 격랑에 휩쓸려 마흔 살에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에게 믿을 건 어릴 때 배운 요리솜씨뿐이었지요. 그는 주유소 한 귀퉁이에서 배고픈 여행자들에게 음식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테이블 하나에 의자 여섯 개로 시작한 레스토랑은 입소문을 타고 날로 번창했지요. 그는 일반적인 팬 형식의 튀김기계가 아니라 닭고기를 신속하게 조리할 수 있는 압력 튀김기계를 도입했습니다. 마흔다섯 살에는 켄터키 주지사로부터 ‘커널’이라는 명예대령 칭호도 받게 됐지요.

그는 여기서 번 돈으로 큰 모텔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불이 나 레스토랑과 모텔이 잿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는 또 시작했습니다. 그 자리에 대규모 레스토랑을 다시 지었죠. 그런데 곧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손님이 뚝 떨어졌습니다. 급기야 헐값에 처분해야 했지요.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섰지만 이제 남은 것은 빚더미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아내에게도 버림받았죠. 나이 60에 모든 것을 잃고 극한상황에 빠진 그는 결국 정신병원 신세까지 졌습니다.
65세에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 사회보장기금 105달러를 들고 그는 마지막 희망의 길을 떠났습니다. 중고 승용차에 요리 기구를 싣고 전국을 떠돌며 자신이 개발한 닭고기 조리법을 팔러 다녔지요. 굶주림에 시달릴 때는 요리 샘플을 뜯어 먹으면서 끼니를 때웠습니다.

희망은 좀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려 1008번이나 퇴짜를 맞으며 문전박대를 당하며 그는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마침내 1009번째 시도에서 그는 옛 친구의 레스토랑에 치킨 한 조각당 4센트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65세 때였죠. 레스토랑은 대성공을 이뤘습니다. 가맹점이 2년 사이 600여 개로 불어났고, 지금은 140여 개국에 약 3만 개로 늘어났지요.

그의 이름은 할랜드 데이비드 샌더스. KFC 매장 입구에서 흰 양복에 지팡이를 걸치고 서 있는 노신사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KFC 할아버지’의 상징인 흰 양복은 사실 여름 양복입니다. 어느 겨울날 큰 계약을 체결해야 했던 그가 한 벌뿐인 겨울 양복을 세탁해 놓는 바람에 여름 양복을 입었는데 하얀 옷이 깔끔한 인상을 줬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KFC의 마스코트를 자처하면서 공적인 자리에선 무조건 흰 양복만을 입었지요.
생각하는 사람과 행동하는 사람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를 할 때마다 그 경험에서 배우고,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을 뿐이다.”

이렇게 남다른 끈기와 집념으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이 됐습니다. 노년에는 수익금을 교회와 병원, 보이스카우트, 구세군 등에 보내며 외국 고아를 70여 명이나 입양해 보살폈지요. 그의 뜻을 이어받은 KFC 기금은 지금도 세계식량기구를 통해 굶주리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가 살아 있다면 ‘누군가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로 시작하는 시의 첫 구절처럼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하겠지요? “노래를 부르면서 불가능하다는 그 일과 씨름해 봐./ 결국은 해낼 테니까.”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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