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세계정치의 중심인 미국 뉴욕 유엔본부로 날아가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전쟁종료를 선언하자”는 문 대통령의 제안은 매우 구체적이다. 작년 연설에서 “종전선언은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라는 원론적 언급에 그쳤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의지가 느껴진다.

문 대통령은 2018년 유엔 연설을 시작으로 해마다 ‘종전선언 제안’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대통령이 제안할 때마다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냉소적 반응이 쏟아지며 한국 외교는 점점 외딴 섬이 되고 있다. 특히 작년 유엔총회 화상연설에서는 공무원 피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만행이 자행됐는데도 아랑곳 않고 종전선언을 주장해 큰 비판을 자초했다.

올해 종전 제안은 더 이해하기 힘들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이뤄낼 때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지만, 북한이 핵시설을 재가동하고 미사일 도발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짓밟은 상황에서 어떤 회원국이 이런 순진한 생각에 동의하고 박수칠지 의문이다. 대통령 연설 이틀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북한이 핵개발을 전속력으로 진행 중”이라는 다급한 경고까지 내놨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위배한 탄도미사일 도발도 바로 지난주 일이다.

문 대통령은 매년 유엔총회를 종전선언을 관철하기 위한 무대로 활용하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비이성적 호의, 국제사회와 겉도는 한국 외교의 난맥상을 드러내는 무대가 되고 있다. 국제사회 입장은 명확하다. 핵 폐기 없이는 제재해제, 남북경협 등 그 어떤 것도 안 된다는 것이다. 북의 태도는 더 노골적이다. 온갖 핑계와 선동으로 제재를 무력화하는 한편, 은밀한 개발로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겠다는 속내다. 이런 상반된 입장 속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촉구는 북한의 억지에 면죄부를 주고 입지를 강화시켜줄 뿐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북이 약속을 어기면 취소하고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 그만”이라는 외신 인터뷰까지 했다. 하지만 북한이 종전선언 후 전쟁이 끝났는데 왜 제재하는지, 유엔사령부나 주한미군은 왜 그대로인지를 따지면 불필요한 논란만 증폭되기 십상이다.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이런 파장과 후폭풍을 잘 알 것이다. 제재를 풀고 북의 요구를 들어주면 핵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생각은 순진한 것인지 의도적인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