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과서의 ‘종군 위안부’라는 표기가 ‘위안부’로 바뀐다고 한다. 징용 노동자 관련 표현도 ‘강제 연행’ 대신 ‘강제 동원’ 또는 ‘징용’으로 수정된다. 일본 각의(국무회의)가 지난 4월 기존 표현이 강제적 의미를 담고 있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견해를 채택하자 문부과학성이 취한 후속 조치다. 일본은 정부가 공식 견해를 밝히면 교과서 검정에 반영토록 정하고 있다.

이로써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을 쓰면서 일본 정부의 직·간접 관여를 인정하고 전향적으로 사과한 ‘고노 담화‘는 28년 만에 무력화 단계로 진입했다는 평가다. 물론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론 ‘고노 담화 계승’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교과서 수정 과정에서 드러난 일본 극우세력과 정치권의 조직적 움직임을 볼 때 담화 사문화는 시간 문제로 보인다.

대한제국에 대한 ‘진출’이 아니라 ‘침략’임을 인정한 미야자와 담화, 식민지배를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와 함께 ‘과거사 반성 3대 담화’로 꼽히는 고노 담화까지 무력화된 것은 파탄난 한·일 관계의 징표나 다름없다. 1965년 청구권 협정 체결 이래 힘겹게 쌓아온 관계개선 성과들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린 모습이다. 2012년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나라’를 표방한 아베 정부 출범 이후 집요하게 담화 수정을 시도한 일본 극우와 ‘혐한 정치’의 담합이 부른 파괴적 결과다.

냉정하게 돌아볼 것은 한국 내 저급한 반일 선동정치와 삼류 외교다. 미국 중재로 오랜 진통 끝에 맺은 결실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는 반일 감정에 기대 ‘적폐’로 몰고 부정했다. 선진 민주국가에선 생각하기 힘든 도발적 외교였다. 감정만 앞세운 대일외교 난맥상은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다. 징용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외교 협의를 거부하다 일본이 수출제한 조치를 취하자 ‘죽창가’ 운운하며 전쟁하듯 했다. 징용과 무관한 일본 민간기업에 대한 과잉 불매운동도 정치권이 앞장서 부추겼다.

예전의 일본은 우경화 노선을 걸을 때 한국 반응을 의식했지만 이제 거리낌 없이 폭주한다. 반대로 언제나 도덕적 우위에 있던 한국이 되레 일본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역력하다. 언제부턴가 정상회담과 관계개선에 매달리는 것도 우리 쪽이다. 지금이라도 대일 감정 외교가 초래한 난맥상을 성찰하고 직시해야 한다. 정치적 이해타산에서 벗어나 국익을 앞세운 성숙한 대일 외교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