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디지털시대의 '그린에너지'
최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식사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서른이 된 딸아이가 생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비혼(非婚)을 선언했다네. 오랫동안 고민해봤지만,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가는 것만이 꼭 자기 미래의 정답은 아닌 것 같다고 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내가 더 놀란 건 아내의 반응이었어. 자신은 그 결심을 지지한다고. 여러 세대를 거쳐 인생을 살아왔지만, 다음 세대가 온전한 환경 속에서 예전과 같은 삶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라고 하더군.”

친구가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우리 사회의 미래 지속가능성이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관련한 여느 공적인 담론보다 더욱 실감나고 아프게 다가왔던 시간이었다. 요즘 더 부쩍 절감하지만, 최근 몇 년간 국내외 기상이변과 재해는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최근 녹색연합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대부분 사람들의 인식이 그러함을 보여준다. 조사 응답자의 80.1%가 기후위기는 심각한 상황이며, 그 영향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각 주체의 기후위기 대응노력 정도와 관련해서는 응답자 절반 이상이 우리 모두가 “노력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정보기술(IT)업계 종사자로서 기후환경 악화에 대한 소식과 우울한 전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IT산업은 ‘굴뚝산업’으로 불리는 전통 제조업에 못지않게 물리적인 에너지를 쓰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클라우드와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과 같이 확산되는 주요 기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은 대량의 전력과 탄소배출 없이는 운영될 수 없다. 기업들이 대대적인 변화와 혁신으로 바로 실천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디지털 데이터 경제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야말로 그 혁신의 가장 중요한 대상 중 하나다. 국가 전체 전력량의 최대 10% 수준까지 차지하며, 매년 45%씩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는 ‘전기 먹는 하마’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 어느 분야보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인식의 절박함과 과감한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디지털 경제의 주역이 미래 사회 공멸의 주범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다행히 필자의 회사를 포함한 주요 IT기업은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전력을 향후 수년 내 모두 재생에너지로 운영할 수 있도록 준비에 들어갔다. 선진국 또한 ESG정책을 핵심 과제로 포함하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위험을 보여주는 ‘둠스데이 시계’(지구 종말시계)가 올해 자정까지 불과 100초만을 남겨놓고 있다고 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어도 미래의 생존과 번영을 도와야 하는 IT산업은 그 어느 분야보다 앞서서 기업의 그린에너지 혁신 실천 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디지털의 정언명령은 ‘그린’이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