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00대 기업 가운데 올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했거나, 채용하지 않기로 한 곳이 67.8%에 달한다는 설문조사(한국경제연구원)는 86만 명으로 역대 최대인 취업준비생들을 더욱 좌절하게 한다. 그만큼 공개채용 계획이 줄었다는 답변일 테지만 공채를 대체할 수시채용은 통과하기 훨씬 힘든 ‘바늘구멍’이고, 취업준비에도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밖에 없어서다. 세계경기 회복세와 본격 취업시즌 개막에 희망을 걸었던 취준생들에겐 천 길 낭떠러지 같은 ‘채용 절벽’인 셈이다.

문제는 이런 공채 축소, 수시 및 경력직 채용 확대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됐다는 점이다. 올해 신입 수시채용 방식을 도입한 기업은 벌써 63.6%에 이른다. 급속한 산업구조와 경영환경 변화 때문이다. SK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그룹 공채를 폐지하면 5대 그룹 중 공채는 삼성밖에 남지 않는다. 길게는 6개월까지 실시하는 ‘인턴십 확대’도 한번 채용하면 정년까지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검증에 검증을 거쳐 인재를 선별하려는 기업들의 몸부림이다. 이런 기류는 정부의 공채 권고로 돌려세울 수도 없다.

그렇다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통해 전체 채용시장 규모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해외투자 못지않게 국내투자를 활성화할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해외 사업장을 국내로 유턴시킬 획기적인 산업정책이 절실하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디지털 전문인력 공급을 늘리는 교육정책도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선 정규직 과보호에 따른 노동시장 이중구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몰고 온 민간 원청업체 직고용 요구 등이 청년 취업 기회를 갉아먹고 있다. 자동차업계 노조의 정년연장 요구도 마찬가지다. 이런 고용·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할 정부는 지난 4년간 친(親)노조 입법 폭주,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과속 인상 등 정반대로 질주했다. 더욱 가팔라지는 ‘청년 채용 절벽’은 결국 이 정부가 노동개혁을 외면하고, 오히려 퇴보시킨 뼈아픈 대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세금 일자리’ 100만 개, 고용유지지원금 등으로 ‘희망고문’을 하면서 일자리 통계 분식에 매달려 있을 때가 아니다. 기업 활동을 옥죄는 온갖 반(反)기업 법제를 뜯어고치고, 투자를 가로막는 족쇄를 하루속히 걷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자리 정부’라면서 최악의 고용 성적을 남긴 ‘무능 정부’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