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정치꾼의 미래 vs 기업가의 미래
젖을 먹는 아이에게 미래는 다음 젖을 먹을 때까지의 서너 시간이다. 학생은 내일까지가 미래이다. 내일까지 숙제를 하지 않으면 선생님에게 혼이 나기 때문이다. 학업을 마칠 때쯤 미래의 길이가 갑자기 길어진다. 이때부터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먹고살 일을 생각하면서 미래의 길이는 수십 년이 된다. 중년에 이르러 자식의 미래까지 생각하게 되면 미래의 길이는 더욱 늘어난다. 미래의 길이는 성숙도에 정비례한다.

미래의 길이가 가장 짧은 집단은 정치인일 것이다. 정치인들의 미래 길이는 기껏해야 몇 개월이고 최대한으로 늘려도 다음 선거 때까지 4년을 넘지 않는다. 미래에 국민이 짊어질 처절한 고통의 시간은 그들의 미래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어떤 중요한 정책도 당장 효과가 없으면 검토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미래에 관심이 없기로는 이번 정부 여당이 역대급이다.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연금개혁은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말아야 할 접근 금지 영역이다. 그동안 축적해 놓은 곳간의 곡식은 당연히 나의 몫이며, 여기에 더해 미래 세대의 곡식조차 나의 몫이다. 공공부문에 많은 사람을 뽑고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생색은 모두 나의 몫이지만, 미래 부담은 나의 미래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 정부 여당이 내년도 예산을 604조원, 국가채무는 1068조원으로 편성했다. 집권 5년 동안 예산을 51% 늘리고, 국가부채를 408조원 증가시켰다. 408조원은 10만 년 동안 매일 1120만원을 쓸 수 있는 돈이다. 미래의 길이가 내년 3월까지인 사람들이다.

관료는 정치인보다 미래의 길이가 더 긴 집단이었다. 정부 정책을 담당하는 관료는 단기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중장기적 효과도 동시에 고려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전통이 있었다. 지금은 고통스럽더라도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나오는 경우 이익단체의 극심한 반대를 사명감으로 돌파했다. 그 고통스러웠던 산업 및 기업 구조조정이 한국 경제의 중장기 경쟁력을 높였다. 단기적으로는 달콤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를 망치는 마약이 되는 현금 살포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관료들의 미래도 정치인의 미래처럼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한없이 짧아졌다. 정치인의 강요 때문인지, 아니면 관료 스스로 그렇게 됐는지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정치인과 권력의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고 직을 걸고 미래를 만들어냈던 관료들의 이야기는 전설의 고향처럼 오래전에 종영됐고, 후속작은 예정조차 없다.

한국에서 미래의 길이가 가장 긴 집단은 기업인이다. 정치인의 미래가 다음 선거 때까지이고, 관료들의 미래는 다음 승진 때까지지만, 기업인들의 미래는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는 먼 미래의 순간까지다. 기업 투자는 언제나 미래에 성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기업인의 속성은 미래 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대형 투자를 하는 기업인일수록 미래의 길이는 더욱 길어진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데 투자하는 기업인의 미래는 더더욱 길어진다. 기업인의 미래 길이는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에 달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미래의 길이가 길었던 선배 기업인들의 투자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러나 오늘 대한민국을 이끄는 기업인들의 미래 길이가 어제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기업인들의 미래 길이보다 길어지지는 않은 것 같다. 수십조원의 투자 확대 소식이 들리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확 바꿀 수 있는 과감한 투자는 드물다. 먼 미래를 내다보며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도모하는 미래 열정도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내일은 정치인의 입놀림이나 관료들의 눈치 돌림이 아니라, 기업인들의 미래 투자로 결정된다. 더 긴 미래를 가진 기업인이 기다려진다.

미래의 길이가 길어지는 나라에 미래가 있고, 미래의 길이가 짧아지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미래의 길이가 짧은 집단이 미래의 길이가 긴 집단을 억누를수록 대한민국의 미래는 짧아진다. 그래도 정치인, 관료, 기업인 중 국민이 바꿀 수 있는 집단이 정치인이라는 게 마지막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