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답정너' 정치의 비극
미국 역사학자 바버라 투크먼은 1984년 저서 《멍청이들의 행진(March of Folly)》에서 유사(有史) 이래 인간이 저지른 가장 어리석은 실수 네 가지를 꼽았다. 그리스군이 보낸 거대한 목마를 성 안으로 받아들여 패망을 자초한 트로이 지도자들의 결정이 첫 번째다. 마르틴 루터를 탄압해 종교개혁을 초래한 교황 레오10세의 조치를 두 번째, 식민지 미국인들이 들고 일어난 원인을 오판해 독립에 이르게 한 영국 왕 조지3세의 대응을 세 번째로 들었다. 네 번째는 베트남에 어설프게 개입했다가 당한 미국의 굴욕적 패배다.

미국의 섣부른 아프가니스탄 철군(撤軍) 결정이 ‘베트남’을 제치고 4위를 꿰찰지 궁금하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아프간 정책이 졸속과 무방비 투성이었음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어서다. ‘질서 있는’ 철수로 아프간 상황을 관리할 수 있으며, 미군의 희생이 더는 없을 것이라던 바이든 대통령의 큰소리는 ‘뻥’이었음이 분명해졌다. 최종 철수가 발표되기 무섭게 탈레반 반군이 순식간에 아프간 전역을 접수했다. 도망치듯 빠져나가기에 급급한 미국인들의 모습은 반군세력의 조롱거리가 됐다. 어마어마한 첨단 군사 장비를 고스란히 내줬고, 마무리 철수 작전 과정에서 발생한 테러로 미군 13명을 비롯해 180여 명을 희생시키기까지 했다.

이 모든 대참사가 ‘외교안보통’ 바이든 대통령에 의해 빚어졌다는 사실이 전문가들을 더욱 놀라게 한다. 바이든은 연방 상원의원 시절 외교위원장을 지냈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 동안 부통령으로 외교안보 현안을 챙긴 베테랑으로 불려왔다. 그런 사람이 아프간 대참사의 주역이 된 데는 까닭이 있다. 철군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측근들의 진언(進言)에 귀를 막고 자신의 판단만을 밀어붙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군과 안보분야 참모들이 철군을 서두르지 말자는 의견을 냈지만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가로막혔다. 두 사람이 ‘차단벽’을 친 데는 이유가 있다. 비슷한 생각을 바이든에게 밝혔다가 혼쭐났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나만큼 아느냐”는 바이든의 오만과 ‘일사불란’에 대한 집착이 그를 벽창호로 만들었다. 그가 내부 불협화음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은 워싱턴 정가에 알려진 지 오래다. 그의 전기(傳記)에 “바이든은 궁중음모(palace intrigue)에 관한 기사를 싫어한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다.

아프간에 앞선 ‘베트남 참사’는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확전(擴戰)을 밀어붙인 게 큰 원인으로 꼽힌다. 재임 기간에만 3만5000여 명의 전사자(戰死者)를 낸 결정을 내리면서 반대 의견을 틀어막았다. 참모들이 별도의 비밀회동을 하면서까지 직언을 시도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두 대통령이 비판받아야 할 더 심각한 이유가 있다. 존슨의 전임자였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마련한 ‘독주(獨走) 제동장치’를 깔아뭉개 큰 화(禍)를 불렀다는 사실이다. 케네디는 1961년 쿠바 공산정권 전복을 겨냥한 ‘피그만 상륙작전’을 엉성하게 밀어붙였다가 처참하게 실패했다. 외부 전문가 의견을 봉쇄하고 내부 참모들에게만 귀를 기울인 탓이었다. 혼쭐이 난 케네디는 유사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외교안보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국가안보협의회 최고위원회(엑스콤)를 설치하는 조치를 내놨다. ‘엑스콤’에 안보협의회에 속하지 않은 전문가들을 포함시키도록 외부의견 수렴을 제도화했다. 특정 아젠다 없이도 수시로 모이게 했고, 중요 의제를 다룰 때 일부러 불참해 활발한 논의의 물꼬를 텄다. 1962년 미국과 소련 사이를 일촉즉발의 3차 세계대전 위기로 몰아넣었던 ‘쿠바 미사일 사태’를 외교적으로 해결해낸 것은 이런 안전장치 덕분이었다.

반복된 교훈에 눈감은 채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하면 돼)’를 밀어붙인 바이든의 행태는 미국 사회에 회복이 쉽지 않은 타격을 안겼다. 한국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뒤 등장한 대표적 신조어(新造語)가 ‘답정너’일 만큼 독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탈(脫)원전, 부동산 규제, 소득주도성장 등의 정책으로 나라 곳곳에 골병과 분란을 일으키더니 비판 보도에 족쇄를 채우려는 ‘언론재갈법’ 풍파를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어디로 가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