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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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하루가 멀다고 비슷한 일이, 비슷한 뿌리에서 나온 듯한 일들이 반복되면 그렇다. '황제 의전' 논란이 딱 그런 경우다.

지난 27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아프간 특별입국자 정착 방안을 브리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무릎 꿇고 우산 받친' 의전 논란은 갑자기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취재진(방송 카메라)의 요청에 우산을 받쳐든 직원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려다 생긴 일일 수 있다. 강 차관 개인의 권위주의적 행태의 일면이라 단정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유독 이 정부 들어 의전 과잉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 국민들이 가볍게 봐 넘기지 않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장면이 하나 더 겹친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배구 강국들 틈바구니에서 분전하며 '여자 배구 4강'을 일궈낸 김연경 선수가 입국장 기자회견장에 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배구협회 관계자가 굳이 대통령에 대한 감사 인사를 좀 더 명확히 해달라는 요청에 김 선수 본인도 당황했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거꾸로 황당했다. 6·25 전쟁 국군 유해가 약 70년 만에 귀환하는 행사에서도 전쟁영웅들이 주인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데, VIP 행사의 연출을 위해 비행기에서 내려졌다, 다시 다른 비행기에 올려지기를 반복한 게 불과 1년 전이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의전 과잉'의 여러 단면이다. 흔히 '심기 경호'라 불리는 과도한 예의 요구도 그 뿌리는 같다. 대통령을 언급하고 대통령 사례를 들면 "예의가 아니다"고 받아치는 게 입버릇처럼 된 여권 인사들이다. 68세의 어른이니 고령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라는 얘기가 아니다. 국가원수를 모독하지 말라는 직접적 경고다. "사람이 먼저"라고 했던 대통령을 좀 비판했기로서니, 그 주변으로 인(人)의 장벽을 친 사람들이 마치 '까불지 마, 다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최재형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조상의 친일 행적 의혹에 대해 "그런 식이라면 흥남에서 농업계장을 한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도 친일파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캠프에서 언급하자, 청와대는 즉각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은 대선후보로서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반응했다. 이번엔 “대통령의 뜻이 반영되어 있다”고 했으니 '의전'이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평소 ' 대통령을 왜 (진흙탕 싸움에) 끌어들이느냐'는 식의 심기 경호가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식이니 21세기 한국이 맞나, 민주주의 체제가 맞나 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군사독재, 완곡하게는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이론) 때였던 5·6공 때도 그러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됐나 싶다.

'황제 의전'과 과도한 예의 주문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국내외 행사 때 여러 '의전 실패'로 인한 일종의 트라우마가 작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한번은 민관 회의를 주재하는 대통령이 행사장에 참석해 본인 자리를 찾아가다가 책상에 동선이 가로막혀 버렸다. 문 대통령의 소탈한 성격을 보여주듯, 잠간 멈칫하더니 책상을 뛰어넘어간 장면이 있었다. 오히려 보기 나쁘지 않았고, 윗사람이 저러면 아랫사람들이 얼마나 편할까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대통령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초기 의전 실패가 워낙 큰 교훈을 줘서, 거꾸로 너무 철저하게 된 건 아닐까 생각된다.

진보와 좌파 진영은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세 가지 공략 포인트를 삼았다고 알려져 있다. '노동' '환경' 그리고 '인권'이다. 여기서 '인권'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 외쳤던 것이지만, 이후엔 여성·성소수자·외국인 노동자·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 신장을 주로 뜻하는 용도로 쓰여 왔다. 여기에 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라고 하고, 더불어민주당의 한 대선 예비후보는 "사람이 높은 세상"을 표어로 내걸었다. 사람을 먼저, 그리고 높이겠다는 정권에서 오히려 의전을 둘러싼 인권 파괴적 장면이 계속 이어지고, 예의만 운운하는 그 이유가 진짜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그 '인권'이 운동권의 인권을 뜻하는 것이고, '사람'도 깨어있는 시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좌파와 우파의 역사를 나눠볼 때 파시즘 못지않게 '인권'을 파리 목숨 대하듯 한 게 좌파 공포정치였기 때문이다. 스탈린이 그랬고, 마오쩌둥의 문화혁명기가 그랬고, 북한의 건국 초기부터 지금까지가 그렇다. 평등, 호혜, 연대, 해방 등 온갖 수사(修辭)를 쓰는 좌파 진영에서 결국은, 지도이념의 이너서클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인권도 없고 언제 숙청될지 모르는 대상일 뿐이었다.

과거 운동권의 의식에서도 우리 쪽, 우리 진영 사람이 아니면 모조리 '적'이다. 적에겐 인권도, 존엄성도 사치이며, 박애를 베풀 필요도 없다. 혹시 이런 과거 의식의 잔재가 지금도 남아 있는 건 아닌지 두렵다.

다시 법무부 차관 의전 논란으로 돌아와 보자. 차관은 '늘공'(판사) 출신이지만, 결국 '추-윤 갈등' 때 법무부에 고위직으로 임용된 만큼 그쪽 진영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가는 게 진영 논리이고, 진영의 문화다. 그런 점에서 '황제 의전'은 결코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현 집권세력의 문화와 잠재의식이 낳은 '사생아'라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엔 너무 묵직하다.

장규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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