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의 광고 마케팅 기상도] 디지털 시대의 '나랏말싸미…'
간송미술관은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解例本)’을 개당 1억원씩 100개의 대체불가토큰(NFT)으로 발행해서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한글 창제의 원리가 담긴 국보 제70호에 대한 초유의 결정에 문화예술계에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토큰을 발행하면 오랫동안 시달려온 간송미술관의 재정난 타개에 기여할 것이라는 긍정론이 있는가 하면, 국보 중의 국보에 대해 토큰을 발행하려는 시도가 반문화적 발상이라는 부정론도 있다.

블록체인 기술의 하나인 NFT(non fungible token)란 디지털 파일에 구매자 정보 같은 고유 값을 입력해 원본의 소유권을 보증하는 디지털 자산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자산에는 대체가능토큰(FT)과 대체불가토큰(NFT)이 있다. 토큰의 가치가 각각 같을 때는 서로 대체할 수 있지만, 토큰 각각이 다른 가치를 지닐 때는 대체할 수 없다. 가치의 동등성과 고유성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훈민정음 NFT’의 작품에는 001번부터 100번까지 고유번호가 부여되기 때문에, 구매자는 훈민정음 파일의 100분의 1만큼의 고유한 소유권을 갖는다.

이런 현상은 발터 벤야민의 미학을 다시 소환하게 한다. 복제품의 가치에 일찍이 주목했던 그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대상의 유일무이한 특성인 아우라는 원본에만 나타나기에 복제예술에는 없다고 했다. 복제 과정에서 원작의 아우라가 소멸되며, 복제 기술은 원본을 대체하고 수용자의 마음속에 복제품을 현재화한다는 것. 진품의 아우라는 사라지더라도 훈민정음 NFT 구매자 100명은 복제품의 희소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된다.

디지털 자산화는 시대의 흐름이다. 문화예술작품을 NFT로 발행하면 원작자, 소유자, 발행시간, 거래기록 같은 모든 정보가 고유 값에 저장된다. 디지털 파일에 고유 번호가 있는 NFT 작품은 원본성과 소유권을 보장받게 된다. 무한 복제가 가능한 일반 컴퓨터 파일과 달리, NFT 작품은 희소성이라는 부가적 가치를 얻게 된다. 간송미술관의 결정에 대한 반론도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훈민정음 NFT’ 발행을 국보 중의 국보라는 이유만으로 반대하는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근시안이다.

미국 예술가 비플의 ‘매일: 첫 5000일 NFT’ 작품은 지난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780억원에 낙찰됐고, 일론 머스크의 부인인 가수 그라임스의 NFT 미술작품은 경매에서 65억원에 낙찰됐다. 사진작가 김중만도 고가의 사진 작품을 누구나 저가에 구매할 수 있도록 NFT로 공개했다. 아트센터 나비도 간송미술관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38종의 NFT 포천 카드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대의 NFT 거래소인 오픈시(OpenSea)에서는 현재 2000만 개 이상의 NFT가 거래되고 있다.

기업에서도 관련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NFT 개발업체인 알케미에 투자했고, JYP엔터테인먼트도 K팝 기반의 NFT 사업에 진출했다. 카카오는 자체 개발한 클레이튼을 기반으로 NFT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 광고 시장이 활성화되면 NFT를 활용한 광고도 가능해진다. 보그, 에스콰이어, 롭리포트 같은 패션 잡지사는 블록체인 비디오 광고 플랫폼 비디(Vidy)와 NFT 플랫폼 출시를 위해 기술 제휴를 했다. 광고주와 광고 게시자가 암호화폐 비트코인을 구매하면, 구매한 코인을 플랫폼 사용자에게 배분하는 구조로 광고 플랫폼을 운영한다.

디지털 파일의 무한한 복제성을 극복하고 파일에 유일성과 희소성을 부여하려는 시도가 NFT의 출발점이었다. NFT를 제2의 비트코인으로 부르는 까닭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희소성과 유일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송미술관도 ‘훈민정음 NFT’ 100개를 발행한다는 야심찬 시도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원본의 가치를 어떻게 복제 파일 100개로 전이해서 구매자들에게 유일성과 희소성의 가치를 제공할 것인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나랏말싸미 … ’의 가치를 디지털 시대에 알맞게 창출하는 문제가 정말로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