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중국식 '선부론' vs '공부론'
공산당 유일 지배체제인 중국에서는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 공산당의 우산 아래 노선투쟁만 있을 뿐이다. 경제정책도 마찬가지다. 농민 중심의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마오쩌둥은 ‘모두가 잘살자’는 ‘공부론(共富論)’을 주창했다. 당시 인구의 90%가 농민이었다. 그러나 이는 현실성 없는 아마추어 정책으로 결국 실패했다.

어이없는 ‘참새의 비극’도 그때 일어났다. 농촌 지도에 나선 마오가 곡식 낟알을 해치는 참새를 박멸하라고 지시하자 그 해 2억 마리 이상의 참새가 죽었다. 참새가 사라지자 해충이 들끓어 대흉년이 들었고 2000만~4000만 명이 굶어 죽는 참사가 일어났다.

뒤를 이은 덩샤오핑은 1978년 개혁·개방과 함께 ‘선부론(先富論)’을 주창했다. ‘일부가 먼저 부자가 되게 하자’는 것이었다. 굶주리던 인민은 열광했다. 그 결과 중국은 ‘세계의 공장’을 넘어 미국과 패권을 겨룰 만큼 성장했다.

2013년 집권한 시진핑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기치로 내세웠다. 그러나 경제가 가라앉으면서 청년 실업률이 15%대로 치솟고 도농격차는 더 벌어졌다. 14억 인구 중 6억 명이 월수입 1000위안(약 18만원) 미만으로 연명하는 상황이다. 이에 시진핑이 다시 들고나온 게 ‘공동부유(共同富裕)’다.

이는 표현만 바꿨을 뿐 마오쩌둥의 ‘공부론’과 같다. 민간기업과 고소득층의 부를 당이 ‘조절’하고 ‘자발적’ 기부를 통해 인민과 나누자는 것이다. 겁에 질린 텐센트 등 빅테크 6대 기업이 금방 1600억위안(약 30조원)을 내놨다. 다른 기업들도 눈치를 보고 있다. 그동안 빅테크들의 목을 비튼 것 역시 이를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내년 공산당대회를 앞두고 시진핑 3연임을 위한 장기집권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중국몽’ 같은 정치구호보다는 ‘퍼주기’가 더 잘 먹히기 때문이다. 공산당 특유의 국가관리 본능에다 G7에 끼지 못하는 조바심, 미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앞세우려는 의도까지 겹쳤다.

중국 기업에 투자한 사람들은 주가 폭락으로 멘붕에 빠졌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언제든지 게임의 규칙을 마음대로 바꾸는 공산당이 세금과 규제에 이어 ‘보호비’까지 청구할지 모른다. 이러다 마오 시절의 악몽이 재현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