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최초의 근대식 공장인 조양방직이 폐업한 지 반세기 만에 카페 명소로 거듭났다.
강화도 최초의 근대식 공장인 조양방직이 폐업한 지 반세기 만에 카페 명소로 거듭났다.
문화의 숨결이란 이런 것일까. 낡은 방직공장에 새 꽃이 피었다. 한때 번성했으나 잊히고 버려졌던 공간들이 ‘문화의 옷’을 갈아입고 다시 태어났다. 바닷가 제강공장과 산속 제지공장, 오래된 조선소에도 문화예술의 꽃이 피고 있다.

강화읍 신문리 향나무길에 자리 잡은 ‘조양방직’. 1933~1958년 직물산업을 이끌었던 공장이 긴 폐허의 시간을 견뎌내고 현대식 카페로 탈바꿈했다. 빛바랜 천장과 목재 기둥 아래 여공들이 늘어앉아 일하던 작업대는 긴 커피 테이블로 변했다. 세월의 더께를 완전히 벗겨냈지만 이름은 전통 그대로 ‘조양방직’이다.

카페 안에는 진귀한 소품도 많다. 2018년 이곳을 리모델링한 이용철 대표가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골동품이다. 공장 건물을 포함한 전체 면적은 6611㎡(약 2000평). 주말이면 연인과 가족 나들이객이 줄을 잇는다. 일제강점기 강화도 갑부 홍재용·재묵 형제가 세운 근대식 공장이 젊은 감성의 ‘뉴트로(신복고·新復古) 성지’로 거듭났다.
속초 청초호 옆의 칠성조선소 카페.
속초 청초호 옆의 칠성조선소 카페.
속초 바닷가의 청초호 옆에 있는 칠성조선소도 문화명소다. 2017년까지 배를 만들고 수리하던 작업장이 깔끔한 전시관으로 변신했다. 나무를 다듬던 야외 공간은 어린이 놀이시설로 바뀌었다. 소형 레저선박을 건조하던 공장은 카페, 인부들의 숙소는 북살롱이 됐다.

코로나 시대 연인·가족 쉼터로

조선소 창립자 최칠봉 씨의 손자 부부 덕분에 3300㎡(약 1000평) 규모의 이 땅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되살아났다. 옛적 고기잡이배와 배를 끌어 올리던 크레인은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이곳에는 주말마다 3000~4000명, 연간 40만 명이 방문한다. 최근엔 코로나 때문에 좀 줄었다.
부산 고려제강의 ‘F1963’에 들어선 서점.
부산 고려제강의 ‘F1963’에 들어선 서점.
부산 수영구 고려제강 공장에 들어선 ‘F1963’은 면적 6만㎡(약 1만8150평)의 초대형 복합문화공간이다. ‘F’는 Factory(공장), 1963은 공장 설립연도를 뜻한다. 쇠를 불려 강철을 만들던 공장이 책과 음악·미술·쉼터를 아우르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2016년 부산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서점(예스24)과 갤러리(국제화랑 분관), 자동차전시관(현대모터스튜디오), 예술전문도서관, 음악홀(금난새뮤직센터)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건물 사이의 산책로를 거닐며 카페와 식당에서 여유를 즐긴다.

섬이나 바닷가뿐 아니라 산속과 도심에도 이런 곳이 많다. 전북 완주 소양면 해월리의 산속 제지공장에는 높이 33m의 빨간 ‘산속 등대’가 서 있다. 전일제지와 동일제지의 굴뚝에 새 디자인을 입힌 것이다. 옛 폐수처리장을 활용한 야외극장과 미술관, 체험관, 카페, 아트플랫폼도 갖췄다. 2019년 방탄소년단(BTS)이 앨범을 촬영하고 간 뒤 더욱 유명해졌다.

충북 청주 연초제조창은 한때 근로자 2000명이 일한 국내 최대 담배공장이었다. 2018년 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문을 열면서 ‘핫플’로 떠올랐다. 다른 곳에선 접근이 제한된 수장고(收藏庫)를 이곳에선 누구나 볼 수 있다. 담뱃잎 보관소인 동부창고는 문화예술 교육, 체험 공간으로 쓰인다.

경기 안양의 유유산업 옛 공장은 안양박물관과 김중업건축박물관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경북 문경 쌍용양회 공장도 산업문화유산과 연계한 컬처팩토리, 아이디어파크 등 스포츠·문화 복합테마공간으로 변모할 예정이다.

이런 명소에는 경제와 문화의 숨결이 함께 배어 있다. 땅이나 건물 면적이 다른 곳보다 넓어 활용도가 높다. 오랜 시간 축적된 역사와 현대 문화의 향기, 젊은 감각의 스토리텔링 요소까지 갖췄다. 이른바 문화경제학의 토양 위에 피워올린 인문학의 향연장이다.

세계적으로도 오래된 건축물에 문화의 옷을 입혀 각광받는 곳이 많다. 버려진 유휴 건축물을 활용하니 비용이 절감되고, 무형의 창의성과 상상력까지 체득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오르세는 기차역, 英 테이트모던은 발전소
스페인 구겐하임은 조선소에서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은 버려진 기차역에서 세계적인 문화공간으로 변모했다. 수많은 승객이 오가는 역의 특수성을 살려 기둥 없이 넓은 아치로 꾸민 공간은 이 미술관의 상징이 됐다. 1939년 이후 약 50년 동안 방치됐다가 1986년 말 현재의 모습으로 재단장했다. 인상파 회화를 비롯한 19세기 미술작품의 보고이기도 하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미술관은 폐쇄된 발전소 자리에 들어섰다. 템스 강변의 뱅크사이드발전소가 1981년 문을 닫은 뒤 우범지대가 될 뻔했다가 2000년에 건물 한가운데 높이 99m의 굴뚝을 아름다운 조명탑으로 꾸미면서 새롭게 변신했다. 20세기 이후 현대미술품을 연대·사조별로 전시하고 도서관과 카페·식당·기념품점·세미나실까지 갖춘 예술관광지가 됐다.

카페가 된 방직·제지공장…옛 조선소엔 '북살롱' [고두현의 문화살롱]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은 폐업한 조선소에 자리 잡았다. 산업폐기물로 가득하던 이곳에 1991년 지방정부와 시민들이 힘을 모아 뉴욕에 있는 구겐하임미술관의 제5분관을 유치하면서 지역경제와 문화 경쟁력을 동시에 되살린 관광명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