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교통요지에 첨단 물류단지를 세우려는 기업에 대한 서울시 인허가 지연이 잘못됐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한경 8월 19일자 A1, 4면)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하림이라는 특정 회사의 예상치 못한 금융부담이나 경영애로 차원을 넘어서는 사안이다. 민원인에겐 헌법보다 더 무섭다는 지방자치단체의 ‘갑질 행정’이 여전하고, 이런 딱한 사정이 하림만의 고충이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민간 토지 소유주와 시가 맞부딪칠 때 도시개발은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한가라는 과제로도 이어진다.

하림이 화물터미널로 쓰였던 서울 양재동의 9만4949㎡를 4525억원에 사들여 물류단지 건설에 나선 것은 2016년이다. 한 해 전 국토교통부가 ‘도시첨단물류단지’ 시범지역으로 지정한 데 따른 투자였다. 그런데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가 이 사업안을 거부하고 나섰다. 시 개발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서울시가 하림의 개발계획을 수용하지 않은 데는 꽤 복잡한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 자체의 부지 활용 복안이 달랐던 데다, 투자의향서를 거듭 돌려보낸 과정을 보면 연구개발(R&D) 시설 비중에 대한 견해차부터 시장 공석 등 복합 요인이 작용했다. 시 내부에서도 찬반이 나뉘었다는 후문을 듣고 보면, 고질적 칸막이 행정은 중앙정부나 지자체나 여전하다.

결국 공익감사로 서울시의 완고한 행정이 바뀔 수밖에 없게 됐고, 5년간 방치된 양재 물류단지 사업은 속도를 내게 됐다. 문제는 이게 하림만의 일도, 서울시에서만 빚어지는 일도 아니란 사실이다. ‘골목상권 보호 논란’으로 인허가에만 8년이 걸린 롯데쇼핑 상암동 사업장도 같은 사례다. 매각 문제로 대한항공이 속앓이를 단단히 했지만, 결국 서울시 뜻대로 공원이 될 ‘송현동 부지’도 본질은 비슷하다.

지자체들은 재정난 돌파, 일자리 창출을 외치며 ‘투자 유치’ ‘기업 우대’를 입에 달고 살지만 실제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관(官) 중심’을 넘어 ‘관 우위’의 행태는 백년하청이다. 5년간 하림이 지출한 1500억원의 금융비용은 누가 책임지나. 서울시가 감사원 경고장을 받았지만, 본공사가 시작되기까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장담 못 한다. 준공까지 하림이 서울시와 관할 서초구청을 쫓아다니며 받아야 할 도장은 아직도 수백 개가 남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