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아프간의 '당나라군'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최후의 순간’을 맞았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주요 도시를 차례로 점령하고 카불까지 밀어닥치자 아프간 정부는 항전을 포기하고 항복을 선언했다. 이달 말로 예정된 미군 철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동안 정부군은 무기를 버린 채 앞다퉈 도주했다.

인구 4000만 명인 아프간의 정부군 숫자가 30만 명이 넘는데도 7만5000여 명에 불과한 탈레반 앞에 맥을 못 췄다. 뉴욕타임스는 월급을 받으려고 장부에만 이름을 올린 ‘유령 병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는 5만 명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원금이 엄청났지만 이 돈도 줄줄 샜다. 미국이 20년간 쏟아부은 돈만 2조달러(약 2340조원)에 이른다. 자금줄로 따지면 게임이 안 되지만 정부군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탈레반은 텅 빈 기지에 남은 첨단 헬리콥터까지 맨손으로 확보했다.

병력 열세와 군인들의 사기 저하에 지휘부의 전략 부재까지 겹쳤다. 주요 군 지휘관들은 특수부대를 즉흥적으로 배치하며 쓸데없이 전력을 낭비했고 심지어 탈레반과 ‘항복 거래’에 나섰다. 지난달에는 병사 1600여 명이 국경을 넘어 타지키스탄으로 도망쳤다.

정치권의 무능과 분열도 심각했다. 대통령은 경험 많은 군사 전략가를 밀어내고 자신과 측근들이 군을 직접 지휘하기 위해 10개월 동안 국방부 장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이렇듯 군의 기강이 아래위로 허물어졌으니 ‘당나라군’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당나라 군대도 원래는 강군이었으나 권력의 개입으로 오합지졸이 됐다. 측천무후가 엘리트 군부를 왕권 위협의 적폐 세력으로 몰아 무너뜨리고, 전문성 있는 군인 대신 문벌 측근에게 군 인사권을 넘기면서 ‘최대 강군’이 순식간에 ‘허수아비군’으로 변해버렸다.

미군이 제공한 첨단 무기를 갖고도 어이없이 자멸한 아프간군과 집권층의 무능·분열을 보면서 군대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새삼 묻게 된다. 이래저래 죽어나는 건 국민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