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 통신선을 끊고 사흘째 연락두절이다. 13개월 만에 통신선을 잇자고 한 것도 북한이고,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 개시를 트집 잡아 갑작스레 단절시킨 것 또한 북한이다. 한·미 훈련을 예년의 12분의 1 규모로 대폭 축소했음에도 “대가를 치를 자멸적 행동”(김여정)이라더니 어제는 “엄청난 안보위기를 느끼게 해줄 것”(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라며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주한미군 철수 주장까지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대화 재개를 미끼 삼은 북한 대남전략의 실체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관계 개선이 틀어진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고, 향후 무력 도발을 하더라도 자신들은 정당하다는 명분 축적용에 다름 아니다. 좀 더 들여다보면 작년 마이너스 성장(-4.5%) 등 경제난에다 최근 수해까지 겹친 북한의 어려운 사정이 계기가 됐다. 미국은 대화 재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한·미 훈련 중단 요구는 잘 먹히지 않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북한의 ‘제멋대로 행태’는 세게 밀어붙이면 한국 정부가 들어주는 일이 계속 누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미·북 협상을 한답시고 2018년 이후 연대급 이상의 한·미 실전 훈련을 하지 않았고, 일명 ‘김여정 하명법’인 대북전단금지법을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통과시킨 게 정부·여당이다. 이번엔 여권 의원 74명의 훈련 연기 요구 연판장 사태도 벌어졌다. 국립외교원장 내정자란 사람은 한·미 훈련 내용을 북측에 알려주자고 하고, “우리는 훈련하는데 북한은 훈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정부는 관광 재개 및 이산가족 상봉, 도쿄올림픽 동시 참가 등 남북 대화창을 여는 데만 열중하고, 국내서도 태부족인 코로나 백신 지원까지 꺼내들었다. 이렇게 원칙도 없이 ‘구걸’ 일변도의 대북 유화정책이 지금의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반도의 군사 긴장 고조는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다”며 대화 재개만 촉구하고 있다. 북한의 속내를 뻔히 보고도 이런 식이면, 북의 대남 전략·전술에 휘둘리겠다고 자청하는 격이다. 남북 대화나 수해·코로나 피해와 관련된 인도적 지원은 계속 시도하더라도 한·미 훈련 등 안보 이슈를 희생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원칙을 바로세워야 한다. 비밀리에 친서를 교환하는 식의 접근은 더 이상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