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올림픽이 가르쳐준 것들
2020 도쿄올림픽이 종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오는 8일 폐회식을 끝으로 17일간의 열전을 마무리한다. 사상 유례없는 코로나19의 팬데믹 속에 열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래도 역시 올림픽이다. 관심이 없다던 사람들조차 막상 판이 벌어지자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4+1’년을 갈고닦은 최고 선수들의 숱한 명승부가 펼쳐졌고 가슴 뭉클한 사연과 이야기도 넘쳐났다.

성숙해진 올림픽 문화

잘한 선수와 팀에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건 당연지사다. 양궁 3관왕의 안산을 비롯해 ‘디테일 끝판왕’의 철저한 사전 준비로 대회 초반 한국에 금메달을 잇달아 안겨준 양궁 대표팀, 금·은·동메달을 고루 수확한 남녀 펜싱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여자 기계체조 도마의 여서정, ‘도마의 신’ 양학선의 빈자리를 당당하게 금메달로 채운 남자 기계체조의 신재환, 한국 수영의 미래로 떠오른 황선우, ‘갓연경’을 앞세워 준결승에 진출한 여자 배구팀…. 이들 덕분에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이 모처럼 웃고 환호했다.

하지만 올림픽이 빛나는 건 메달의 반짝임 때문만이 아니다. 영광의 순간을 준비하며 절차탁마의 오랜 시간을 견뎌낸 도전정신, 공정한 경쟁 속에 빛나는 인류의 연대감이 없다면 메달의 영광은 퇴색할 수밖에 없다. 경쟁 자체보다는 경쟁의 성과만 부각해온 메달 지상주의가 퇴조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반갑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에게 원망이나 질책 대신 격려와 위로를 보낼 정도로 올림픽을 즐기는 문화가 성숙해가고 있다는 얘기다.

아깝게 메달을 놓친 4위들에게 쏟아지는 갈채가 대표적이다. 한국신기록과 함께 육상 트랙&필드 올림픽 최고 성적을 올린 남자 높이뛰기의 우상혁, 다이빙 3m 스프링보드의 우하람, 팔꿈치 신경이전 수술을 받고도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최고 성적을 낸 25m 속사권총의 한대윤, 남자 기계체조 마루운동의 류성현, 역도 여자 87㎏ 이상급의 이선미 등이 그 주인공이다.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은 7인제 럭비팀은 세계랭킹 2위인 뉴질랜드와의 첫 경기에서 5-50으로 대패했지만 역사적인 올림픽 첫 득점의 기쁨이 더 컸다. 전통적 효자종목이었던 태권도, 레슬링, 유도 등의 메달 부진이 아쉽긴 했지만 선수들을 탓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태권도 남자 68㎏ 동메달 결정전에서 끝내 메달 획득에 실패한 이대훈은 웃는 얼굴로 승자인 중국 선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유도 남자 100㎏급의 조구함은 9분여의 혈투 끝에 금메달을 놓치고도 이긴 일본 선수의 손을 번쩍 들어주고 축하했다. 이들이 드높인 ‘패자의 품격’은 인류가 왜 올림픽을 열어왔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승자의 배려와 패자의 품격

1988년 서울올림픽 양궁 2관왕 김수녕은 활을 그토록 잘 쏘는 비결이 뭐냐고 묻자 이런 명언을 남겼다. “시위를 떠난 화살에는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명언이 도쿄올림픽에서 나왔다. 내리 10점 만점으로 상대를 따돌리며 전 종목 석권의 기대를 키웠다가 8강전에서 뜻밖의 고배를 마신 김우진의 입에서다. ‘충격적인 결과로 대회를 마치게 됐다’는 한 외신 기자의 말에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스포츠는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다. 언제나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충격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쉽지만 그게 또 삶이 아니겠느냐. 어떻게 해피엔딩만 있겠느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가르쳐준 도쿄올림픽, 그리고 올림피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