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년이 넘도록 1당 독재체제를 유지해온 수단은 강력한 통제와 경제 발전이었다. 1970년대 말 도입한 개혁·개방정책과 시장경제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문화대혁명을 거친 중국에는 사상이나 종교 같은 정신적인 구심점이 많지 않다. 대다수 중국인에게 신앙의 대상은 돈이다. 중산층 이상 계층은 저소득층이 자신들과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갖게 되는 상황을 굳이 반기지 않는다. ‘공산당은 사유재산을 보장하고, 가진 사람들은 권력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가 공산당 1당 체제를 떠받치고 있다.

불안감 커지는 중국 중산층

중국 공산당이 최근 쏟아낸 일련의 기업 규제 정책은 이런 암묵적 합의와 배치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게 사교육과 부동산 정책이다. 사교육비와 집값은 출생률 저하의 핵심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극단적인 조치를 내놓을 수 있는 명분까지 갖춘 것이다.

사교육 억제 지침은 공산당 중앙판공청과 국무원(행정부) 판공청이 공동으로 내놨다. 중앙판공청은 한국의 청와대 비서실에 해당하는 조직이다. 정치교육학으로 칭화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속내가 그대로 담겨 있다는 의미다.

이번 지침에 따라 예체능 외에 영어나 수학 같은 교과목을 가르치는 사교육업체(학원) 설립이 앞으로 금지된다. 기존 업체는 비영리기구로 전환해야 한다. 공산당이 140조원 규모의 사교육 시장을 일시에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는 평가다.

중국 온라인에선 3개월에 1억원이 들어가는 고액 과외나 사교육업체들이 내놓은 수천만원짜리 여름방학 학습캠프 상품이 새삼스럽게 논란이 되고 있다. 사교육업체를 지탄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공산당의 선전 전술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뜩이나 ‘관시(關係)’가 중요한 중국에서 명문대를 졸업하면 학연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공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중국에서 많은 가정들이 무리해서 학원을 보내고, 빚을 내가며 학군 좋은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런 면에서 사교육 금지 조치는 중산층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비밀 고액 과외 시장이 이미 형성됐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체제 유지 위해 경제 발전 버리나

부동산 부문에선 ‘보장성 임대 주택’이란 정책이 눈길을 끈다. 청년층이나 저소득층 등에게 장기 임대주택을 제공한다는 개념은 한국의 공공 임대주택과 비슷하다. 주목할 부분은 ‘시장 세력의 참여를 장려해 시장 수준 이하의 임대료를 받도록 한다’고 명시한 점이다. 시장 세력이란 민간 부동산 개발업체들을 말한다. 사기업의 팔을 비틀어 공공 임대주택 사업을 떠맡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 6월 알리바바 같은 민간 대기업이 몰려 있는 저장성을 ‘공동 부유 시범구’로 지정했다. 소득 분배 개선, 사회복지제도 강화, 도농 격차 해소 등을 이뤄낸 뒤 다른 성으로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부유층과 기업의 ‘사회 환원’도 공동 부유의 한 방편으로 제시됐다.

일련의 정책들을 보면 공산당이 분배 위주의 공산주의 이념으로 돌아가겠다는 방침을 확실히 세운 것으로 해석된다. 내년 가을 당대회에서 장기 집권에 도전하는 시 주석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불평등 해소를 내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포기하는 것은 체제를 유지해온 기반인 경제 발전을 희생시킬 가능성이 다분하다. 암묵적 합의가 깨진 상황에서 중국 중산층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해진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