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통신선이 복원되자마자 정부의 대북 지원 재개 조치가 이뤄지고, 여권에선 한·미 연합훈련 연기와 ‘4·27 남북한 정상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북한이 스스로 끊은 통신선 하나를 되살린 것뿐인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통일부가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적 협력 물자 반출신청 2건을 승인한 것부터 그렇다. 정부가 대북 물자 반출을 중단한 것은 지난해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 때문이었다. 북한은 대한민국 국민을 원거리 총격으로 사살한 뒤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김정은의 “미안하다”는 한마디뿐, 북한은 공동 조사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아 진상 규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북 지원 재개를 결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정부는 반출 물자의 종류, 지원 주체 등을 공개하지 않아 의문을 더한다.

통일부 고위 관계자는 이달 중순 실시될 예정인 한·미 연합훈련 연기까지 주장했다. 이미 여권에선 북한 김여정이 한·미 연합훈련 철폐를 요구하자 연기·중단론이 이어져온 터다. 한·미 훈련은 2018년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실기동 훈련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만 실시해왔다. 이마저도 연기하자는 것은 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판에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위가 걸린 훈련을 대북 흥정거리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여당이 8월 임시국회 처리를 공언한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 한두 개가 아니다. 경협 이행을 위한 북한 인프라 투자에만 100조원 넘게 소요된다는 게 전문 기관들의 분석이다. 천문학적 비용도 문제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한 경협은 한 치도 나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경협 대못’부터 박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도 주한미군 주둔 문제 등 안보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 더욱이 북한은 판문점 선언에 따라 설치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마당이다.

김여정은 어제 담화에서 “통신선 복원은 단절된 것을 연결시킨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당근’부터 제시하며 조바심을 낸다면 북한의 협상 지렛대와 요구 수준만 높아질 뿐이다. 혹여라도 이 모든 것이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임기 말 ‘깜짝쇼’식 정상회담을 위한 수순이라면 거센 역풍을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