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은행들을 위한 변명
대형 금융지주사들이 올 상반기 사상 최대 순이익을 거두고 중간배당까지 약속했지만 주식시장의 반응이 미지근하다. 시장의 관심은 온통 내달 6일 상장하는 카카오뱅크에 쏠려 있다. 공모 청약에 국내외 기관 1167곳에서 2585조원의 주문이 들어왔고, 개인투자자 186만 명이 58조원의 증거금을 쏟아부었다. 카뱅 증시 데뷔에 금융지주의 실적 모멘텀이 반감된 것이다.

시장의 환호는커녕 일각에서는 은행의 실적호전을 비딱하게 보고 있다. 국민들은 코로나로 빚더미에 올라 어려운데 은행들이 탐욕을 부리며 돈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온당치 않고, 포퓰리즘적인 시각이다. 은행에서 뭔가 뜯어내려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가깝다. 대선 후보들이 ‘은행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프레임을 걸고 빚 탕감 같은 포퓰리즘 공약을 내놓을지 걱정하는 금융인이 많다.

은행들이 돈을 어떻게 벌었기에 억울한 비난을 받을까. 올 상반기 KB금융은 전년 동기 대비 44.6% 늘어난 2조4743억원, 신한금융은 35.4% 증가한 2조443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하나금융(1조7532억원), 우리금융(1조4197억원), 농협금융(1조2819억원)도 신기록을 세웠다. ‘빅5’의 상반기 순이익은 모두 합쳐 9조3729억원이다. 불과 5년 전의 1년 치 순익(7조8246억원)을 훨씬 웃돈다. 수치상 호황을 누린 건 분명하다.

금융업은 인허가 사업이다. 정부의 규제와 보호를 받는다. 그래서 은행들의 이익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과는 결이 다른 건 사실이다. 특히 수출 대기업은 주로 해외에서 달러를 벌어오지만 은행은 아직 내수 산업에 머물러 있다.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영업하고 있지만 그 비중은 미미하다. 은행 이익이 늘어날수록 우리 가계와 기업으로부터 그만큼 이자와 수수료를 많이 거둬갔다는 단선적인 논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이익이 늘었다고 폭리를 취했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이자 장사(예대금리차)’의 수익률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수년째 내리막길이다. 10년 전 시중은행들의 NIM은 2%대 중후반이었으나 지난해 1.3%대까지 떨어졌다. 올 들어 시장금리가 올라 NIM도 소폭 개선됐지만 대출자산이 급증한 게 전체이익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마진율이 줄어도 ‘파이’가 늘어나면 이익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구조다. 실제 5대 은행의 6월 말 원화대출 잔액은 1307조3000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27.6% 급증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보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집을 사고, 주식·코인 열풍에 올라타기 위한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선 결과였다. 은행들이 코로나발(發) 초저금리의 덕을 본 셈이다. 탐욕을 부렸다면 은행이 아니라 우리 경제 주체들이고, 정부 정책이 부추긴 측면이 크다.

금융지주의 실적개선에는 코로나 위기가 최악을 넘기면서 대손충당금을 작년보다 수천억원씩 적게 쌓고, 증권 위탁매매수수료 수입이 폭증한 것도 한몫했다. 이처럼 실적요인을 뜯어보면 탐욕이나 폭리 등과는 거리가 멀다. 서슬퍼런 금융당국이 눈감아줄 리도 없다.

금융그룹이 ‘실적잔치’를 한다지만 글로벌은행에 비하면 수익성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수익성 지표인 총자산수익률(ROA)은 상반기 0.7~0.8% 수준이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간체이스(1.44%)의 절반에 그친다. ‘빅5’의 상반기 순익을 다 합쳐도 JP모간(30조원)의 30%에 불과하다.

은행들이 당장은 표정관리를 하고 있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실적이 피크에 달했다는 위기감이다.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 케이뱅크에 이어 토스뱅크가 곧 영업을 시작한다. 카뱅은 최근 플랫폼을 발판삼아 ‘넘버원 리테일 뱅킹’을 선언했다. 시중은행을 다 잡아먹겠다며 발톱을 드러냈다. 은행들이 실적잔치가 아니라 ‘최후의 만찬’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