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정부
비판할 거리가 한둘이 아닌 문재인 정부지만 저출산만큼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은 “집단 자살사회”(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라는 섬뜩한 평가까지 받는, 이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 대상’이다.

‘10년 넘게 반전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마당에 세종대왕이 환생한들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드는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인류 전체가 당면한 문제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2017년 말 이후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게 이해는 된다. ‘답이 없다’고 여기는 문제에 골치를 앓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 인구학자를 만나 얘기를 듣고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그는 “정부의 노력으로 인구 감소 추세를 반전시킨 스웨덴과 러시아의 선례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출산도 포기해선 안 돼"

스웨덴은 1969년 출산율이 2.0명 아래로 떨어지자 1970년대 중반부터 ‘공공 돌봄’ 강화 등 여성이 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출산율이 2000년대 중반부터 반등해 지금까지 세계 최상위권인 1.9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사회 시스템 변화보다 아이를 낳은 가정에 현금을 지원하는 방법을 동원한 점이 달랐다. 재정 면에서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2000년대 들어 인구와 출산율을 함께 반전시키는 성과를 냈다. 이 학자는 “정책 성공 사례가 분명히 있는데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개인 선택의 영역으로 치부해 팔짱만 낀 건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하긴 문재인 정부가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 등을 의식해 손 놓은 분야가 어디 이뿐이겠나. 저출산이야 역대 어떤 정부도 풀지 못한 난제 중의 난제라 그렇다 치자. 머지않아 곪아 터질 것이란 사실을 모두 알고, 해답이 정해져 있는데도 정부가 지난 4년여간 외면한 문제가 상당하다.

대학 구조조정이 정확히 그렇다. 학령인구 감소가 교육계의 화두로 떠올라 국립대를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 정책이 처음으로 시행된 게 20여 년 전 김대중 정부 때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조만간 큰 문제가 될 것”이란 경고가 잇따랐는데 대학 동문들과 지역 민심을 거스르지 못해 구조조정을 차일피일 미뤘다. 그 결과는 지방 거점대의 대규모 미달 사태였다. 급기야 지난 5월 뒤늦게 ‘폐교’까지 공언했지만, 그 후에도 무엇이 바뀌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갈 정부여야

사업 부지를 ‘부실 징발’했다가 반대 여론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주택공급 확대 정책, 지지자 반발을 의식해 퇴로 모색은 꿈도 못 꾸고 있는 탈원전 정책도 마찬가지다. 애당초 무능했거나, 정책 추진의 ‘잣대’가 표 계산에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이제 많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이 같은 ‘수수방관 DNA’에 질린 사람들은 그간 주목받지 않았던 이전 정부들의 성과를 재조명하고 있다. 탄핵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은 박근혜 정부마저 공무원연금 개혁, 조선·해운·철강 등 전통산업 구조조정이라는 족적을 남겼음이 새삼 부각되는 건 아이러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이란 성과를 냈던 노무현, 이명박 정부는 두말할 나위 없다.

8개월 뒤면 쌓인 숙제를 풀어야 할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누가 되든 맞닥뜨릴 소명은 분명할 것이다. 반발을 무릅쓰고 나아갈 것인가, ‘미래 세대에 짐만 지운 정부’라는 오명으로 남을 것인가. 선택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