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순의 제자백가] 대선주자들 '원소의 실패'에서 배우라
전국시대를,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의 진나라. 그 나라의 끝은 창대했지만 시작은 미미했다. 근본이 서쪽 변방의 이민족이고 정식 제후국도 아니었다. 주왕실이 부려먹는 경비견 역할이나 하는 국가였다. 주왕실은 진으로 서융을 견제하며 서쪽의 담장으로 활용했는데 서주가 무너지고 주왕실이 동쪽으로 천도할 때 큰 공을 세우면서 진은 정식 제후국이 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열국들에 오랑캐 취급을 받았고 상앙이 와서 개혁을 단행하기 전까지는 낙후된 실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상앙의 변법을 통해서야 강국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한비자의 통치학까지 소화해내며 서쪽의 야만 국가가 천하통일의 주인공이 됐는데, 진의 법가사상은 본래 중원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법가사상은 단순히 부국강병의 길이 아니라 중앙집권제도와 관료제도, 대민 직접지배체제 건설 등 파격적인 국가 건설 혁신안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러한 콘텐츠가 생겨난 곳에서는 크게 쓰이질 못하고 서쪽 변방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것이다. 사실 최첨단 이론, 혁신안이 만들어지는 것과 그것이 활용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새로운 이론과 모델은 발전된 곳에서 만들어지지만 정작 낙후된 곳에서 꽃피우는 경우가 많다. 알렉산더의 망치와 모루의 전술도 그러한 경우에 해당하는데 마케도니아도 진과 같은 변방 국가였다. 집착해야 할 기득권과 과거의 영광, 관성이 없기에 낙후된 나라가 빠르게 새것을 받아들이고 무장하는 경우가 많다. 본래 세상을 바꾸는 에너지는 주변부에서 시작되고 생성되는 것이다. 삼국지에도 비슷한 맥락의 사례가 있다. 바로 원소다.

사대가 삼공(三公)의 지위를 누렸다던 명문가 집안 출신으로 일찍이 명사들을 거느렸던 하북 제일의 제후, 막강한 스쿼드를 갖추고 공손찬, 유우 등과 치른 북방의 1차 삼국지에서 승리한 인물, 그 원소는 왜 삼국지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까? 왜 조조만큼은 아니어도 손권과 유비처럼 삼국 정세의 한 축이 되지 못했을까?

원소 집단을 보면 유비와 손권, 조조 집단에서 보이는 흙 속의 진주, 체제 외곽의 인사가 없었다. 지나치게 엘리트 중심으로 동질적 인사만으로 인재 집단이 꾸려졌다. 당시는 난세였다. 시대의 전환기이고 새로운 방식과 모델을 갖고 새 시대를 열어야 할 시기였다. 언제든 새로운 이론, 모델은 문명한 지식인과 엘리트들이 만든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새 이론과 모델을 직접 강하게 밀어붙이며 새 시대를 열어갈 에너지가 없다. 새 시대를 열어가는 동력은 비(非)엘리트들에게서 기대해야 한다. 집착해야 할 과거와 기득권이 없고 욕망에 솔직한 체제 변방의 숨은 능력자, 굶주린 만큼 야망 있는 동수저와 흙수저들이 있어야 내일을 위한 에너지가 모인다는 것이다. 원소는 그런 인사가 없었다.

대선 정국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후보를 고르고 있고 여기저기 대선캠프가 꾸려지고 있는데 지금이 난세까지는 아니지만 시대적 전환기라는 인식들이 있다.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고 사회의 본질적 문제에 손을 대고 큰 수술을 해야 하는 시기라는 말들이 많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해 미·중 갈등, 저출산과 부동산 문제, 청년 실업률 등 적지 않게 진통을 각오하며 과감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실정인데 대선 후보들 각자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혹시 내가 원소 같은지 아니면 원소와 다른지 말이다. 체제 중심부 밖의 인사가 내 곁에 있는지, 외형적 스펙은 처져도 투지와 날것 그대로의 야망이 있는 인사들을 수혈하고 있는지, 차상위 계층의 욕망을 담보하고 그것을 의제로 설정할 수 있는 사람을 초빙하고 있는지 스스로 따져봤으면 좋겠다. 과감하게 길을 내고 뚫을 새로운 내일을 만들 준비가 됐는지, 그것을 해낼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지 점검해보라는 말이다.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빈부 격차, 양극화의 심화, 갈수록 힘들어지는 청년 자립의 길, 미루기만 했던 공공개혁, 연금개혁, 노동개혁의 문제. 정말이지 과감하게 사회에 칼을 대면서 새로운 내일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보는데 원소 집단과는 다른 대선캠프가 차려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