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경제 살아나니 임금 오른 美
최근 미국의 소셜미디어에서 펜실베이니아주의 버거킹 매장 밖에 내걸린 ‘계약 보너스 1500달러’란 현수막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시급제 직원을 뽑는 게 쉽지 않자 근로 계약서에 서명만 하면 이 돈을 일종의 보너스로 주겠다는 내용이다. 미 기업들이 겪고 있는 구인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에서 80만여 명을 고용하고 있는 최대 체인점 맥도날드는 처음 일을 시작하는 직원의 시급을 종전 11달러에서 17달러로 55%나 올렸다. 학업을 병행하는 직원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대학 등록금 혜택도 주기로 했다. 미 2위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직원들의 최저 시급을 2025년 25달러까지 올리기로 결정했다.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 시급은 7.25달러다.

기업 임금 올려 '인재 쟁탈전'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과거 전문직이나 프로 운동선수에게 주던 ‘계약 보너스’가 트럭 운전사와 호텔 청소부, 창고 근로자 등 서비스업 종사자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구직 사이트인 집리크루터에 올라온 전체 일자리의 20%가 “입사 보너스를 일회성으로 지급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올 3월만 해도 이 비중은 2%에 불과했다. 3개월 새 10배 늘어난 것이다.

기업들이 이처럼 무한 채용 경쟁에 나서는 건 인력 수급 불일치가 심각해서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5월 신규 채용 공고는 920만 건으로 사상 최대였지만 실제 채용은 590만 건에 그쳤다. 기업들은 경기 활황 속에서 인력을 더 뽑고 싶어 하지만 구직자들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을 따지고 있다. 기업들은 ‘당근’을 더 제시할 수밖에 없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미 경제의 예상 밖 호황이 꼽힌다. 올 1분기 6.4% 깜짝 성장한 데 이어 2분기엔 8%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가계 저축액 및 저축률은 역대 최고치다. 발 빠르고 광범위한 코로나19 백신 배포 및 재정정책이 제대로 작동한 덕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최저임금 동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연방 시급이 2009년 이후 12년째 동결돼 있어서다. 개별 주(州)에서 연방 기준보다 높은 시급 하한선을 둘 수 있지만 펜실베이니아 텍사스 위스콘신 등 20개 주는 여전히 연방 수준을 고집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과는 정반대 해법

작년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민주당 소속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최저 시급을 임기 내 15달러까지 올리겠다고 공약했으나 이마저 사실상 물 건너갔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 등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집권당 내부에서도 적지 않게 제기됐기 때문이다. 민주당 상원의원 50명 중 최소 8명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미국에선 정부가 직접 임금 시장에 개입하지 않고도 기업 스스로 소득 분배의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자발적이고 경쟁적인 임금 인상을 통해서다. 기업들은 경기가 살아나자 더 나은 직원을 뽑기 위해 적극적인 구애 전략에 나서고 있다. 직원은 소득을 늘리고 기업은 매출을 확대할 수 있어 ‘윈윈’이다.

한국에서도 고용 및 임금 문제로 떠들썩하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1% 인상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16.4%, 2019년엔 10.9% 각각 올렸다. 강제로라도 소득 하한선을 높이면 근로자들이 그 돈으로 소비를 더 할 테니 결국 성장과 고용을 촉진하게 될 것이란 소득주도성장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을 더 뽑고 임금을 높이는 건 결국 기업과 경제 상황에 달렸다는 걸 미국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