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21세기 아라비안나이트] 코로나 팬데믹 시대 성지 순례
이달 18일부터 이슬람 세계는 일제히 메카 성지 순례기간에 들어갔다. 그리고 순례 마지막 날인 7월 20일을 전후로 1주일간 19억 무슬림들은 ‘이들 아드하’라는 최대의 희생제 축제를 연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해외 신자들의 입국이 불허되면서 이슬람의 절대의무인 성지순례는 이뤄지지 못할 전망이다. 생을 마감하기 전 ‘알라의 집’이라고 여기는 메카의 카바신전을 참배하고 자신의 죄를 정화하고자 했던 수많은 무슬림은 거의 영적인 패닉상태에 빠질 것이다. 매년 250만 명을 수용하던 순례는 작년에 겨우 1만 명에게 기회를 준 데 이어 올해에는 백신 접종을 완료한 18세부터 65세 사이의 자국인과 사우디 국내 거주자 6만 명만 수용한다고 하니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새로운 종교적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왜 순례를 하는가. 카바신전은 아브라함의 전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슬람의 믿음에 따르면 카바신전은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지었다고 한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해보기 위해 자기 자식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내리자, 그는 지체 없이 자식을 내놓았다. 그의 믿음을 확인한 하느님은 자식 대신 어린 양을 희생하게 했다. 희생양이 등장한 것이다. 구약과 꾸란 모두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를 아브라함의 종교로 부르는 배경이다. 그런데 구약에는 그 자식이 본처 사라의 소생인 이삭으로, 꾸란에는 첩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로 기록돼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는 적자 중심으로 이슬람교는 장자 중심으로 신의 뜻을 해석하는 차이다.

카바신전은 오랫동안 무신론자에 의해 우상숭배 신전으로 변질됐다가 630년께 무함마드가 다시 메카를 무혈점령하면서 유일신 알라의 성소로 상징화됐다. 예배 방향도 메카로 정해졌다. 632년 무함마드가 임종하기 전에 마지막 고별순례를 하면서 그 후 무슬림들의 순례가 자리를 잡았다. 카바신전을 일곱 번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그 옆의 ‘마르와’ 동산과 ‘사파’ 동산을 걷거나 뛰면서 일곱 번 왕복하고, 아라파트 지역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신의 은총을 염원한다. 메카순례를 마친 사람들은 ‘하지’라는 호칭으로 각 마을에서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된다.

희생축제 기간에는 예년의 경우 메카에서만 약 100만 마리의 양과 염소, 낙타 등 동물이 4만 명의 종사자에 의해 도살됐고, 파키스탄에서도 800만 마리의 동물 희생이 통계로 잡혀 있다. 동물 보호론자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가슴 아픈 날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도살된 고기들은 이슬람의 3등분 배분 전통에 따라 가난한 이웃, 자선단체, 가족들이 골고루 나누는 도움과 복지의 전제가 강하게 깔려 있다. 희생을 통해 자신의 죄를 정화하고 이를 어려운 이웃들과 나눔으로써 신에게 돌아가는 신앙적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경제적으로 순례는 이슬람 역사 1400년 동안 경제활성화를 촉진하는 최대의 엑스포였다. 매년 전 세계에서 몰려온 수백만 명의 순례객은 몇 달 동안 메카와 메디나 같은 성지도시에 머물면서 물물교환 형식으로 교역의 장을 열었다. 석유가 나기 전까지만 해도 사우디 경제의 대부분은 순례경제에 의존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탈석유시대를 대비해서 사우디 정부가 ‘비전 2030’ 정책을 통해 관광산업 활성화를 최대 역점 사업으로 선정한 것도 이런 전통산업 부활이라는 종교적, 정서적 배경을 갖고 있다. 축제가 시작되면 이슬람 세계 전체는 최고의 경제 호황기를 맞는다. 한꺼번에 도살된 동물들을 처리하고 유통하는 과정을 통해 할랄산업(이슬람 율법으로 허용된 거래)의 핵심인 식품, 육류가공, 모직, 피혁 산업 등의 1년 성적표가 결정되기도 하고 최대의 명절답게 친지 방문, 가족 간의 선물 문화로 옷과 신발, 새로운 가전, 보석, 화장품은 물론 대추야자, 견과류, 초콜릿 같은 소비재가 대규모로 거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폐쇄된 전통시장 대신 홈쇼핑과 배달문화도 이슬람 시장이 적응해야 하는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변화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