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한 ‘대정전 사태’ 발생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벌써 ‘전력 공급예비율’(최대 전력수요 대비 추가 공급 가능한 전력 비율)이 안정권인 10% 밑으로 떨어졌다. 수원 화성 등 일부 지역에선 정전사태까지 빚고 있다. 이달 말에는 전력예비율이 4.2%까지 떨어져, 최악의 경우 212만 가구를 강제 단전했던 2011년 대정전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은 탈원전 정책을 고집해온 정부가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원전 24기 중 현재 가동이 중단된 원전이 8기에 달한다. 대부분 안전상 문제 등을 이유로 멈추거나, 정비기간을 터무니없이 늘려 가동을 지연시키고 있는 경우다. 한빛 4호기는 4년 넘게, 한빛 5호기는 1년 넘게 멈춰서 있다. 신한울1호기는 지난해 4월 준공하고도 비행기 충돌 등을 이유로 가동 승인을 미뤄왔다. 이런 원전들만 제대로 가동했어도 지금 같은 전력수급 불안은 크게 줄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런 근본 대책을 놔두고 정부가 내놓은 전력수급 대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시운전 중인 고성하이 2호기(석탄발전)와 부산복합 4호기(LNG발전)를 긴급 투입하고, 전기 수요를 줄인 기업들에 보상해 주겠다는 정도가 전부다. 이런 급조 대책으로 최악의 폭염에 대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거니와, 설사 올해는 요행히 대정전을 모면하더라도 내년에는 또 어쩌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정부가 석탄발전을 대안으로 계속 내밀 수도 없을 것이다.

정부는 여전히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강조한다. 그러나 신재생을 안정적 에너지원으로 쓰기 힘들다는 것은 두루 입증된 바다. 미국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주가 신재생 비중을 높이다가 지난해 혹한과 폭염 속에 대정전 사태를 겪었다. 정부도 유일한 해법이 원전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이달 초 부랴부랴 신한울 1호기의 가동을 조건부 승인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정부도 솔직할 때가 됐다. 말 많고 탈 많은 탈원전 정책을 과감히 포기하고, 세워둔 원전들을 다시 돌려야 한다. 결단이 늦어지면 실책을 바로잡을 기회도 놓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