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밤늦게 이뤄진 내년도 최저임금(시급 9160원) 인상 결정은 코로나로 경영난에 처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끝내 외면한 처사로밖에 볼 수 없다. 올해 경제성장률(4.0%)과 물가상승률(1.8%) 예상치를 근거 삼았다고 해도, 델타 변이 위협과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격상 앞에 쏟아진 ‘동결 호소’를 결국 무시한 것이다. “우리만 죽으란 소리냐”라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기계가 알바를 대체하고, 고용은 더 줄 것”이란 우려도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5.1%란 인상 폭도 결코 작은 게 아니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른 해에는 정규직 근로자들의 임금도 같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16.4% 오른 2018년 국내 근로자 임금총액이 12.3% 증가했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인상이 전체 국민소득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결국 문재인 정부 5년간 최저임금이 41.6% 오르게 되는데, 같은 기간 국민소득은 10.2%(올해 추정치 기준)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근거가 모두 허구였다는 방증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계와 경영계의 합의를 전제로 한 위원회 방식의 최저임금 결정체계에 근본적 문제가 있지 않은지 원점에서 점검해 볼 때가 됐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정부가 최저임금위원회를 내세운 채 뒤로 빠지고, 모든 책임을 노사에 전가하는 구조다. 미국이 연방 최저임금을 연방의회가 정하면 주정부가 동일하게 유지하거나 높은 수준으로 법에 명시하는 방식과 비교할 때 정부의 책임의식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 구성에 노동계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도 문제다. 이번에도 무산된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화는 이미 일본에선 산업별 최저임금제로 시행하고 있다.

과거 개선 논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와 노·사·공익이 참여하는 ‘결정위원회’로 최임위를 이원화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흐지부지됐다. 노사의 한 치 양보 없는 대치, 항의 차원의 일방적 퇴장, 남은 위원들의 투표로 결정하는 후진적 결정구조로는 내년에도 똑같은 파행이 재연될 것이다. 국회가 나서든지, 결정체계 개편 소위를 꾸리든지 개선안 마련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노사 모두 아쉬움이 있겠지만, 상생을 위해 한발씩 양보하는 미덕이 필요하다”(김부겸 총리)는 공허한 호소를 해마다 되풀이할 순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