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오는 23일 개막하는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정상회담을 여는 방안을 놓고 샅바싸움이 치열하다. 한국은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등 과거사 문제와 일본의 수출규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을 의제로 제시하며 일본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징용·위안부 소송과 관련한 해결책을 한국이 먼저 갖고 오지 않는 한 회담은 의례적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해 감정싸움 양상마저 보인다.

양국 관계가 이렇게 된 데는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이란 미명 아래 전임 정부 때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파기했다. 여권은 ‘토착왜구’ ‘죽창가’ 운운하며 반일감정을 자극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골대’ 자체를 옮기겠다고 하면 누가 신뢰하겠는가.

일본도 ‘혐한(嫌韓)정서’를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는 행태에 갇혀 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 ‘15분 회담’ 등 협의 중인 내용이 줄줄이 흘러나온 것만 봐도 그렇다. 양국이 과거사를 악용해 국민감정만 부추겼으니 외교가 이 지경에 이른 것 아닌가. 스포츠와 달리 외교에선 완승과 완패가 있을 수 없다. 협상과 타협이 골간인데,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식으로 서로 굴복만 요구하면 파국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한·일 외교가 극단적 대치를 보이는 것과 달리 최근 양국 국민 저변에 흐르는 기류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 주목된다. 일본에선 젊은 층을 중심으로 BTS 등 K팝과 한국 화장품 식품 등이 큰 인기를 끌어, ‘문화 한류’가 양국 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마저 나온다. 우리 국민은 코로나가 풀리면 제일 먼저 가고 싶은 나라로 일본을 1위로 꼽은 조사도 있다. 양국 정치인들이 국민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외교관계를 풀 바탕은 마련돼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한·일 양국은 도쿄올림픽이란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과거사는 그것대로 풀되, 상호 국익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 국제정세는 양국이 마냥 밀고 당기면서 서로를 흉보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노골화하는 중국의 패권 야욕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양국 간 공조가 절실하다. 한·일은 ‘반일정치’ ‘혐한정치’에서 탈피해 전향적 자세로 정상회담에 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