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국가지도자가 해서는 안 될 말
말(言)의 힘은 강하다. 한마디 말이 좌절을 희망으로 바꾸고, 무지(無知)를 깨달음으로 채운다. 존경받는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말의 중요성을 잘 알았고, 그 힘을 제대로 발휘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말로 흑인들의 자존감을 흔들어 깨운 마틴 루터 킹 목사, “우리는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는 말로 영국인들을 똘똘 뭉치게 해 2차 대전 승리를 이끌어 낸 윈스턴 처칠 총리가 그런 전형을 보여준다.

인류역사를 진보시킨 지도자들의 연설에는 공통점이 또 있다. ‘우리’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나’와 ‘너’의 편 가르기를 없애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냈다. 시련을 이겨낼 용기를 불어넣고, 모두에게 꿈을 갖게 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말로 미국인들에게 경제대공황을 이겨낼 힘을 불어넣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연설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논쟁은 그런 점에서 짚어봐야 할 게 많다. 여당 선두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한민국은 친일 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깨끗하지 못하게 출발했다”는 말로 불을 지핀 역사논쟁이 특히 그렇다. 이 발언이 전해지자 각계에서 반론이 쏟아져 나왔고, 이 지사 측은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재반론으로 맞서고 있다.

이 지사 말마따나 ‘역사를 보는 인식’은 다양하고, 칼로 무 자르듯 담판 짓기 어려운 영역이다. 작심하고 내지른 ‘역사논쟁’에 풍랑이 일었다고 해서 물러설 이 지사도 아니다. 짚어야 할 건 그런 발언 뒤에 ‘정치셈법’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반(反)기득권’ ‘반미(反美)’의 기치 아래 지지층을 결집해 대선 표 몰이를 시작할 속셈이라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일본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 70년이 훨씬 넘도록 국민을 ‘친일’과 ‘반일’로 편 가르고, 선배세대의 피땀 어린 노력 덕분에 세계 최빈국에서 유엔이 인정하는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를 ‘친미 종속’과 ‘반미 자주’의 허망한 틀로 발목 잡는 짓을 묵과해선 안 된다. 젊은 세대에게 부끄럽고 국제사회에도 민망한 짓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힘을 한데 모으기는커녕 철지난 역사논쟁으로 사분오열시키는 것을 용납해선 안 된다. 지금은 기존 산업과 시장의 생태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4차 산업혁명의 회오리가 몰려오면서, 국민과 기업들이 힘을 한데 모아도 이겨낼지 장담할 수 없는 초(超)변혁의 시대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 지사가 경제 분야 핵심 공약으로 내건 ‘억강부약(抑强扶弱)’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지사는 지난 1일 영상 공개를 통한 대권 출정식에서 “특권과 반칙에 기반한 강자의 욕망을 절제시키고 약자의 삶을 보듬는 억강부약의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특정 분야나 진영의 수장(首長)이 되겠다는 것이라면 몰라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민을 ‘강자’와 ‘약자’로 나누기부터 하는 것은 어설픈 데 더해 끔찍하다.

이 지사가 내놓은 일련의 발언을 접할 때마다 그가 ‘대통령’이라는 직(職)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건지 궁금증이 솟구친다. 기업에서는 최고경영자(CEO)부터 중간 임원, 팀장, 말단 사원에 이르기까지 직무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그에 맞는 일에 전념하도록 한다. 팀장이 할 일을 CEO가 직접 챙기겠다고 나서는 기업치고 제대로 살아남는 곳이 없다.

이 지사가 대선 출정식 영상의 배경화면으로 “공돌이로 썩기 싫다”는 내용의 젊은 시절 자필 메모를 삽입한 장면은 그가 대통령직이 뭔지 제대로 알고 있는 건지 더욱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공장의 많은 일선 근로자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있는데, ‘공돌이로 썩는다’는 표현은 그들에게 큰 상처와 모욕을 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일개 자연인으로서 개인 일기장에 적어놓은 것을 “나는 대선에 도전할 정도로 출세했다”는 신분상승의 과시물로 삼은 것이라면 절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