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기업 특혜' 프레임에 막힌 반도체 지원
“반도체 지원 법안을 올해 안에 볼 수 있을까요?” 최근 만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반도체 지원법 제정을 위한 국회 반도체기술특별의원회의 행보가 지지부진해서다. 반도체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꾸려진 위원회지만 요즘은 배터리와 백신, 디스플레이까지 들여다본다. 업종 간 형평성 등을 이유로 여러 업계에서 지원 요청이 이어진 영향이다.

정부도 나름대로 반도체산업 지원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R&D) 비용을 최대 50%까지 세액공제해주겠다고 발표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30~40%가 적용된다.

업계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목돈’이 들어가는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가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준비 중인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은 대기업 10%, 중견기업 12%, 중소기업 20% 등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시설투자는 38조5000억원으로 R&D투자(21조1000억원)보다 50% 이상 많았다. 다른 기업들도 R&D보다 시설에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최근 세계 각국은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지원금 공세를 퍼붓고 있다. 미국은 자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는 기업에 설비투자액의 최대 40%에 달하는 법인세 공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은 반도체 투자 비용의 20~40%를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중국은 2030년까지 반도체 장비·원자재·소모품에 관해서는 세금을 받지 않는다.

일각에선 정부와 국회가 ‘대기업 특혜’ 시비를 우려해 파격적인 지원안을 내놓지 못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DB하이텍 등에 세금 혜택이 집중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의미다.

업계에선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전성기인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의 50%가량을 차지했다. 하지만 반도체산업 육성 전략의 부재로 한국 등에 선두 자리를 내줬다. 최근엔 일본도 달라졌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5월 대만 TSMC에 190억엔(약 2000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TSMC가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에서 추진하는 반도체 R&D 거점 조성 사업을 돕기 위해서다. 일본 정부는 이 사업에 필요한 비용의 절반을 부담할 예정이다.

요즘 글로벌 반도체업계는 졸면 죽는 전쟁터다. ‘대기업 특혜’ 논란을 걱정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정부와 국회가 “자국 기업 지원을 주저하는 한국이 외국 기업까지 팍팍 밀어주는 경쟁국들을 어떻게 이기겠느냐”는 업계의 목소리를 한번 더 곱씹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