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좌판 노인의 가득 찬 바구니
본격적인 무더위를 알리는 듯 따가운 햇볕이 쏟아진 며칠 전의 일이다. 조금만 걸어도 이마에 구슬땀이 송송 맺히는 오후 늦은 시간에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으로 퇴근길을 재촉하는데, 요새 들어 볼 수 없었던 상추 고사리 시금치 도라지가 가득한 빨간 바구니에 좌판을 벌이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에 삶의 고단함이 느껴졌고, 어디서 농사를 짓고 이 많은 짐을 어떻게 여기까지 가져왔는지 궁금증이 밀려왔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임에도 이들 채소는 얼마 팔지 못한 듯 보였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 발걸음을 되돌려 손에 쥘 수 있는 만큼 이것저것 담아 달라고 하며 만원짜리 몇 장을 건넸다. 마음 같아서는 바구니를 모두 비워주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해 본다. 예전 노점 좌판은 주로 전통시장 점포 앞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질척이는 시장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다가 국수 식혜 등이 가득 놓인 좌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이야 전통시장이 현대화되면서 비포장 길을 걸을 일도 없을뿐더러 점포 앞 노점상도 예전만큼 찾아보기 힘들다.

제조업이 변변치 않았던 산업화 이전의 이야기이니 전통시장 노점을 꾸려가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들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가족 중 누군가가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창피하고 숨길 일은 아니었다. 며칠 전 길거리 좌판 노인의 모습이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던 것도 사라져 가는 노점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노인의 삶의 고단함이 어릴 적보다 더욱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길거리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전해주는 전단을 받거나 노점 좌판에서 물건을 사는 일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이 초래한 대면 접촉의 부담과 함께 기피 현상이 낳은 결과다. 이로 인한 어려움은 사회 저소득층에 더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쓸쓸함이 밀려온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과거 외환위기 같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왔듯이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에도 올해 초 대구 지역 ‘사랑의 열매 이웃돕기’에서 목표 성금을 조기 달성했다는 소식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아직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속도가 붙은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 팬데믹 종식에 대한 기대 역시 높아지고 있다.

그리 머지않은 시간에 전통시장 좌판에 앉아 손맛 좋은 주인장이 말아 준 칼국수 한 그릇을 마음 편히 먹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오늘은 며칠 전 길거리에서 마주쳤던 노점 노인의 빨간 바구니가 한결 가벼워졌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