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중견기업들의 기업승계 제도 개선이 더는 미룰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중소제조업 경영자 가운데 60대 이상 연령층 비중은 2000년 14.3%에서 2019년 26.2%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앞으로 이 같은 경영진 고령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작 이들로부터 기업을 승계해야 할 2세 경영자들은 폐업이나 매각, 본사 해외이전 등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이유는 상속·증여세 부담 때문이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50%로 일본(55%)보다 낮지만 기업을 상속받을 땐 대주주 할증이 붙어 60%가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물론 연 매출 3000억원 미만 기업을 대상으로 최대 500억원까지 공제해주는 제도가 있다. 그러나 7년간 직원을 한 명만 줄여도 감면 혜택을 전부 토해내야 하고, IT나 바이오 등 신사업에 진출하고 싶어도 업종유지 조건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공제 신청 건수가 전체 대상의 1%에 불과하다. 세계 주요국들이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대폭 완화하는데 한국만 20년째 이 지경이다.

설문에 따르면, 중소기업 2세 경영자 대다수(88.5%)는 상속·증여세를 부담할 여력이 없으며 이 때문에 62.5%는 상속세 부담이 적은 나라에서 기업 활동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기회만 된다면 언제라도 해외로 이전하겠다는 것이다. 상속세 때문에 ‘사업을 축소·매각할 상황’(36%)이거나 ‘폐업할 위기’(11%)라는 답변도 있었다. 거기다 현 정부 들어서는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확대,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등 반기업 정책까지 줄을 잇고 있다. 이쯤이면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해외 이전을 생각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가 됐다.

664만 중소기업은 국내 일자리의 83.1%, 기업 전체 매출의 48.5%를 만들어내는 우리나라 경제의 뿌리이자 주춧돌이다. 기업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일자리와 기술, 세수(稅收)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부(富)의 대물림’ 프레임에 갇혀 기업승계 지원을 위한 상속세 완화에 소극적이었다.

어제 한경 주최로 열린 ‘기업승계 제도개선 토론회’에서는 상속세율 인하, 공제 조건 완화 등 제안들이 쏟아졌다. 이런 내용들을 담아 ‘중소기업승계지원법’(가칭) 제정을 추진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부디 이런 노력들이 기업승계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질시, 단선적 시각을 극복하고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