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면 여성도 '할당' 원치않아
아직은 사회 곳곳 성 불균형 심각
젠더 갈등, 다양성 관점서 풀어야

박성완 논설위원
한국에서 대졸 여성들은 1990년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조직 내에서 ‘소수’였기 때문에 남성중심 문화에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입사 면접 때 부모님이야 잦은 야근을 이해하겠지만, 결혼하면 남편이 이해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기업에서 여성 임원은커녕 부장급도 찾아보기 힘들 때였다. 맞벌이라도 육아는 여성 몫이었다. 여성들은 결혼을 뒤로하고 일에만 집중하거나, 결혼 후 가족 도움을 받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슈퍼우먼’이 됐다.

요즘은 달라졌다. 지금 20~30대는 성별 때문에 뭐가 되고 안 되고 하는 얘기를 별로 안 듣고 자란 세대다. 여성들은 졸업 후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남성들도 가부장적 사고에서 많이 벗어났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8년 조사에 따르면 “가족 생계는 남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질문에 20대 남성의 41.3%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맞벌이가 늘면서 육아도 공동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여성이 가사업무에 쏟는 시간이 길긴 하지만, 젊은 세대의 양성 평등에 대한 인식은 확실히 높아졌다.

그런데 한편에선 젠더 갈등이 커지고 있다. 한경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20~30대 남녀 모두 “우리가 더 차별받는다”고 생각한다. 젠더 갈등이 실재하긴 하지만 과거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던 ‘극단적 성향의 남녀 전투’가 마치 일반적인 현상인 듯 확산된 것은 정치권이 이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활용하며 공론화한 측면이 있다. 물론 갈등 확산의 기저엔 일자리가 줄어 취업이 어려워진, 그래서 한층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현실이 존재한다.

경쟁이 격화하면 ‘공정’에 민감해진다. 현 정부는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를 내세웠지만, 젊은이들은 조국 사태 등에 실망하고 등을 돌렸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처럼 일률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공정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를 파고든 것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다. 젊은 남성들의 분노에 호응하며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여성할당제 폐지’까지 꺼내들었다. 물론 “공정한 경쟁”을 전제로 삼긴 했다.

여성 입장에서도 ‘할당제’가 무조건 달가운 것은 아니다. 실력 없이 할당제 때문에 자리를 얻었다는 편견이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성할당제 폐지’는 남성들에게 어필하는 정치적 구호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단 민간기업 채용엔 ‘여성할당제’가 없다. 오히려 면접 등 정성평가에서 비공식적인 ‘남성할당제’가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공무원 채용엔 ‘여성할당제’가 아니라 ‘양성평등채용목표제’가 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이 제도 덕에 추가 채용된 공무원 중엔 남성이 여성보다 많다.

국공립대 교수 채용에선 2030년까지 특정 성별비율이 75%를 초과하지 않도록 돼 있다. 현재는 남성교수 비율이 83%다. 내년 8월부터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이사회 전원을 특정 성별로 구성해선 안 된다. 작년 9월 말 기준 국내 200대 상장사(시가총액 기준) 등기임원 중 여성비율은 4.5%다. 여성 이사가 한 명도 없는 곳도 73%에 달한다. 미국은 여성이사 비율이 30%이고, 글로벌 기업 평균도 20%대다. 이런 현실에서 남성이 차별받기 때문에 ‘여성할당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남녀는 세상을 함께 살아간다. 딸도 키우고, 아들도 키운다.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 개인의 의지가 ‘주어진’ 성별 탓에 꺾여서도 안 된다. 스웨덴에는 어릴 때 남성 여성이란 단어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도 있다. 언어가 편견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젠더 이슈는 정치권이 나서서 갈등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사회전반의 불공정을 해소하고 ‘다양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풀어가야 한다. 그런 정책엔 조기교육도 포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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