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진단을 잘못하면 애먼 곳을 째고, 역효과 나는 약을 처방한다.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꼭 그렇다. 25번이나 대책을 내놨는데도 집값이 잡히지 않는 것은 애당초 원인 분석을 잘못하고, 엉뚱한 처방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 4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17% 올랐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식 통계’를 내세운다.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보다 정책 실패를 축소해보려는 의도가 더 강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자체 조사한 결과를 보면,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79% 폭등했다. 대표적 민간 통계인 국민은행의 매매가격 상승률(75%)과 비슷하다. 정부가 발표한 한국부동산원의 매매가격지수 상승률 17%와는 한참 차이가 난다. 물론 통계작성 방식이 다르다. 부동산원 지수는 표본 아파트단지의 실거래가와 주변 시세 등을 종합해 추산한다. 표본단지에서 거래가 없으면 시세 반영이 잘 안 된다.

산정방식이 어떻든 누가 봐도 4년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17%에 불과하다는 통계는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이 정도라면 여당이 부동산특별위원회까지 만들어 대책을 내놓는 등 야단법석을 떨 이유가 없다. 국민이 지금처럼 집값과 세금 폭탄에 분노하지도 않을 것이다. 김헌동 경실련 본부장의 지적대로 집값이 17% 올랐다면서 같은 기간 공시가격을 80%나 올린 건 그 자체로 모순이다.

정부도 정책 실패를 인정한다. 문 대통령은 올초 신년사에서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며 사과했다. 지난달 취임 4주년 연설에선 임기 중 가장 아쉬웠던 점을 부동산정책으로 꼽으며 “4·7 재보선에서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고도 했다. 그런데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통계 논란도 논란이지만, 핵심은 다락같이 오른 집값에 내집 마련 꿈이 날아간 사람들, 그리고 집주인 실거주 요건 때문에 멀쩡히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하는 ‘전세 난민’들의 고통이다. 서울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하남·용인 등 경기도 지역 전셋값은 1년 새 40% 이상 뛰었다. 이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실거주 규정이나 임대차 3법 등 부작용이 명백한 법과 정책은 다시 들여다볼 생각조차 안 한다. 이젠 집값이 너무 올라 갑자기 떨어지는 것도 리스크가 돼버렸다. 어떻게든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고 서서히 거품을 빼야 한다. 부동산 정책조차 정치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이 정부에서 가능할지 불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