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앞에 놓고(對酒·二)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번쩍하듯 찰나에 사는 몸
풍족하나 부족하나 그대로 즐겁거늘
하하 크게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


□ 백거이(白居易, 772~846) : 당나라 시인.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세부터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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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생전에 즐겨 암송한 시입니다. 정 회장은 걱정으로 마음이 졸아들 때, 이 시를 읊으며 용기를 냈습니다. 눈앞의 작은 분쟁을 경계하고 호방하게 큰일을 도모하는 지침으로 삼기도 했지요.

한 몸에 난 촉수끼리 싸우다니…

달팽이는 머리 위에 두 개의 촉수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몸에 난 촉수끼리 서로 싸우면 어떻게 될까요. 불필요한 분쟁을 의미하는 고사성어 ‘와각지쟁(蝸角之爭)’이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달팽이(蝸) 뿔(角) 위에서 싸우는 것처럼 아무 소용도 없는 다툼을 뜻하지요.

『장자(莊子)』에 이와 관련한 얘기가 나옵니다.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혜왕은 불가침 조약을 맺었던 제나라 위왕이 약속을 깨자 자객을 보내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자 신하인 공손연은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치자고 했고, 또 다른 신하 계자는 백성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일이라며 반대했습니다. 이에 혜왕이 재상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재상은 도가의 현인인 대진인(戴晉人)을 만나보라고 했죠.

혜왕을 알현한 대진인은 달팽이 우화를 들려줍니다.
“달팽이의 왼쪽 촉수에는 촉(觸)씨라는 사람의 나라가 있었고 오른쪽 뿔에는 만(蠻)씨라는 사람의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가 사소한 영토분쟁으로 전쟁을 일으켜 서로가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는 비극에 이르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혜왕이 엉터리 이야기라고 말하자 대진인은 다시 한번 이렇게 말했지요.
“우주는 끝이 없습니다. 끝없는 우주에서 우리 지상을 내려다보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위나라와 제나라의 분쟁 역시 달팽이 두 촉수의 다툼과 다름이 없지 않겠습니까?”
혜왕이 이 말을 듣고 “대진인은 성인보다 위대한 인물”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긍정의 힘이 통찰을 낳는다

남들이 3대에나 일굴 위업을 당대에 다 이룬 정주영 회장의 통찰력도 이런 사고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뭐든지 가능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지요. 부하들이 온갖 이유를 대며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해 봤어?”라는 한마디로 ‘부정의 싹’을 잘라버렸습니다.

그가 네 번째 가출해 인천 부두에서 막노동할 때의 ‘빈대 사건’도 그렇습니다. 노동자 합숙소에서 밤마다 빈대에게 시달리던 그는 어느 날 꾀를 써서 밥상 위에 올라가 잤습니다. 그런데 잠시 뜸한가 했더니 이내 빈대가 밥상 다리로 기어 올라와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머리를 써서 밥상 다리 네 개를 양재기 물에 하나씩 담가 놓고 잤습니다. 빈대가 밥상 다리를 타고 오르지 못하게 하려는 묘안이었죠.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빈대들이었습니다.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더니 사람을 향해 몸을 날리는 게 아닙니까.

그때 그는 깨달았습니다. 하찮은 빈대도 물이 담긴 양재기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으려 저토록 연구하고 사력을 다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뜻을 세우고 최선을 다하면 무엇이든지 다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 회장이 조선소를 짓기 위해 자금을 구하러 백방으로 뛰어다닐 때도 그랬죠. 영국으로 날아간 그의 손에는 조선소가 들어설 황량한 백사장 사진 한 장만 들려 있었습니다. 차관을 신청할 때 그는 우리나라 돈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한국인의 선박제조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강조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그는 은행 측이 전공과 학력을 묻자 전날 옥스퍼드 대학에 산책갔던 걸 가지고 “옥스퍼드 총장이 내 사업계획서를 보고 경제학 박사 학위를 주겠다고 했다”는 유머를 던지며 위기를 넘겼습니다. 선박 수주를 미리 받아야 한다는 조건에 선박왕 오나시스의 처남이자 해운업계 거물인 리바노스의 주문을 받아 차관도입을 성사시킨 것도 정주영식 해법의 백미였지요.

그가 객관적인 환경과 사실만 따졌다면 애당초 조선소 건립은 생각지도 못했을 겁니다. 고학력과 전문성을 요구할 때 엉뚱한 유머로 대응하지도 못했겠지요. 그는 위기 상황일수록 긍정적 사고로 승부했고, 뜻하는 바를 대부분 다 이뤘습니다.

엄동설한에 푸른 잔디를?

또 다른 일화도 있지요. 1952년 12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부산에 있는 유엔군 묘지를 방문하기 직전, 미군은 “대통령에게 황량한 묘지를 보일 순 없다”며 묘지를 푸른 잔디로 단장하는 공사를 입찰에 부쳤습니다.

이때 정 회장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뒤 “공사를 맡겨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만에 낙동강변 밭에 있는 보리를 수십 트럭 싣고 와 묘지를 푸른 잔디밭으로 바꾸어 놓았죠. 미군 관계자들은 “원더풀!”을 연발했고, 이후 미군 공사는 모두 그의 차지가 됐습니다.

나중에 그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잔디가 아니라 푸른빛이었고, 그래서 나는 푸른빛을 입혔다”고 말했지요. 이것이 곧 긍정의 뿌리에서 나온 통찰의 힘입니다.

‘무한대의 가능성’과 ‘긍정에서 나온 통찰력’으로 당대 최고의 가업을 일군 정주영. 그가 ‘부싯돌 번쩍하듯 찰나’의 삶에서 ‘끝없는 우주’의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았던 것도 ‘천장 위의 빈대’와 ‘한겨울의 잔디’, ‘달팽이의 두 뿔’을 아우르는 ‘긍정의 힘’에서 나온 것이었지요.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