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아닌 정치인이 정책 결정
연료비 연동제 유명무실 평가

이지훈 경제부 기자
[취재수첩] 결국 국민이 낼 돈…전기료 언제까지 동결하나

“에너지는 테크놀로지(기술)입니다. 그런데 정책 결정 과정에선 정치인 목소리만 들립니다.”

한 에너지업체 대표가 최근 정부의 3분기 전기료 동결 결정에 아쉬움을 토로하며 한 말이다.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에너지 정책이 정치적 논리에 좌우되고 있다는 게 에너지 분야 최전선에 있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정부가 2·3분기 연달아 전기료를 동결하기로 한 것은 올해 초 도입한 ‘연료비 연동제’를 스스로 부정했다는 점에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연료비 연동제는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유가 등 연료비를 3개월 단위로 전기료 책정에 반영하는 제도다. 연료비를 전기료에 연동하지 않는 곳은 국내총생산(GDP) 상위 30개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는 게 도입 당시 정부의 설명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유가 하락으로 올해 연료비 연동제 도입 시 약 1조원의 전기료를 인하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한국전력의 숙원사업을 해결하면서 전기료 인상에 따른 국민 저항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올해 국제 유가가 정부 예상과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 애초 정책 구상이 뒤틀어져버렸다. 작년 2분기 배럴당 30달러 선이던 두바이유 가격이 올 들어 70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그러자 정부는 갑자기 ‘전기료 인상 유보 권한’을 발동시켰다. “전기료 인상이 지속적인 물가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전기료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연료비 연동제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내년 3월 대선을 코앞에 둔 4분기엔 전기료 인상이 불가능할 것이란 시장 전망이 나온다.

전기료 인하는 정책 결정자들에게 달콤한 카드다. 전기료를 낮춰주는 걸 싫어할 국민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선심 정책의 부담은 고스란히 공기업 한전이 떠안는다. 이 추세라면 한전의 부채 규모는 계속 불어나 2024년 159조4621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한전 부채는 132조4753억원이었다. 2·3분기 전기료 동결로 한전이 떠안는 비용만 약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연료비 연동제 도입으로 저평가된 회사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한전 주주들도 급락하는 주가를 넋 놓고 바라볼 뿐이다.

이번 전기료 동결로 한전이 떠안은 손실은 결국 국민의 돈으로 메꿔야 한다. 훗날 전기료를 더 많이 인상하거나 공적 자금을 투입해 한전 부실을 처리하는 방법 외에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금 당장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느라 당면한 비용을 미래로 이연하고 있다”는 시장의 비판을 그냥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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