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은 입법, 행정, 사법 삼권이 분립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를 대표한다. 법치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의 사법부 수장이란 위상만 놓고 보면, ‘정의의 보루’라고도 지칭할 만한 자리다. 이런 중차대한 요직을 맡은 대법원장이 일반인이라도 지탄받을 만한 수준의 추문을 계속 낳고 있다. 제1야당이 ‘법치(法治)의 몰락-김명수 대법원장 1352일간의 기록’이란 제목으로 비리백서를 냈을 정도다. 대법원장 비리백서라니, 국민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또 하나의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

야당의 정치공세라고 하기에는 김 대법원장이 그간 보여준 행태에 문제가 많다. 누구보다 정직해야 할 대법원장이 대놓고 거짓말을 했다. ‘사법 농단’ 시비에 휘말린 후배 판사가 사표를 내자 “탄핵이 논의 중인데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소리를 듣겠느냐”며 사표를 반려했다. 그는 법원 독립성을 흔들었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가 녹취록이 나오자 말을 바꿨다. 노골적인 코드인사도 논란이 됐다. 자신이 회장을 지낸 친정권 성향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을 대거 요직에 배치했다. ‘인사 농단’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최근 불거진 ‘공관 만찬’ 논란이다. 그의 며느리 강 모 변호사가 근무하는 ㈜한진 법무팀이 2018년 초 대법원장 공관에서 만찬을 했다. 그 자리엔 김 대법원장 부인도 참석했고, 공관 전속 요리사가 메뉴를 준비했다는 증언들이 나왔다. 시기가 참 묘했다. 2017년 말 김 대법원장이 ‘땅콩 회항’ 사건으로 기소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직후다. ㈜한진은 대한항공과 같이 한진그룹 계열사다. 대법원장의 만찬 참석 여부와 상관없이 오해받기 딱 좋은 처신이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 공관에 손주 놀이시설까지 만들어 비난받기도 했다. 오죽하면 판사 출신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조차 “공사 구분이 없다”고 비판했을까.

김 대법원장의 잇단 추문으로 사법부 신뢰는 더욱 추락했다. “사법부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겠다”고 했던 3년9개월 전 취임사를 돌아보면 스스로도 낯 뜨거울 것이다. 국민들의 눈에는 정치권으로부터도, 재판에서도 그리 독립적이지 않은 듯하다. 염치가 있으면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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