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이번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조가 충돌하자 공단 이사장이 단식농성에 들어가는 황당한 사태까지 벌어졌다. 현 정부 들어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노노(勞·勞) 갈등이 적지 않았는데, 사태를 해결해야 할 기관장이 ‘노노 간 자체 해결’을 요구하며 농성에 나선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우선 이런 사태가 벌어진 1차적 책임은 기관장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이유야 어쨌든 올초부터 계속된 노노 갈등 상황을 풀지 못한 채 두 손을 들어버린 것은 책임 있는 공인의 자세가 아니다. 그러나 오죽하면 기관장이 그랬겠는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두 노조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쪽을 탓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비정규직 노조는 국민연금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의 형평을 들어 건보공단도 자신들을 정규직으로 직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규직 노조는 이를 “공정의 탈을 쓴 역차별”이라고 반대한다. ‘신(神)도 탐낸다’는 공공기관에 어렵게 들어왔는데 비정규직들이 ‘무임승차’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논리다. 포털에서는 “노조들 밥그릇 싸움으로 취업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며 또 다른 기회의 평등 논쟁이 불붙고 있다. 기회가 평등하지도, 과정이 공정하지도 않은 정책으로 현장에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기존 직원들과 취업준비생 간에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태를 복잡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현 정권이다.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이라는 친(親)노동 정책에 집착해 고용구조가 왜 그렇게 됐는지 면밀히 따져보지 않은 채 비정규직 정규직화에만 집중하다 딜레마를 자초했다. 같은 장소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기능과 역할을 무시한 채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파견회사 정규직들까지 직고용토록 하면서 파견회사들의 반발을 산 것 등이 무리한 정책 추진 사례로 제기돼 왔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이런 정책이 앞서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도로공사에서도 물의를 일으켰다. 그런데도 정책 변화나 대응매뉴얼을 마련하지 않고 방치한 책임이 크다.

유사 사태 재발을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오류를 시인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건보공단은 이를 기준으로 사태를 해결해야 함은 물론이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개입하면 배가 산으로 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