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디즈니' 탄생 기대

CJ ENM 5년간 5조원 투자
웨이브 2025년까지 1조 투입

콘텐츠·영상·OTT·테마파크
거대한 콘텐츠 생태계 구축

김희경 문화스포츠부 기자
[김희경의 콘텐츠인사이드] K콘텐츠의 성공 자신감, 'IP 어벤저스'로 새로운 도전

넓은 세상을 향한 모험은 설레는 동시에 두렵다. 한국 기업이 만든 TV, 자동차가 처음 미국에서 판매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졌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미국과 유럽 시장을 강타했을 땐 신기해하면서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안해했다. 하지만 끝내 그 저력이 입증됐다. 가전제품과 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에서 수출 강국이 됐다. K팝으로도 전 세계 팬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최근엔 문화적·정서적 간극이 가장 큰 콘텐츠 분야에서 승전고를 울리고 있다. ‘빈센조’ ‘사랑의 불시착’ ‘스위트홈’ ‘킹덤’ ‘승리호’ 등 수많은 작품이 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잘 만든 콘텐츠 하나로 미국 여고생에게도, 프랑스 할아버지의 마음에도 닿고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는 새롭게 펼쳐질 모험 앞에서 또 한 번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고 있다. 현재 그 어느 분야보다 경쟁이 치열한 플랫폼 전쟁에 참여하면서다. 넷플릭스, 디즈니 등 글로벌 기업들의 혈투가 펼쳐지고 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 CJ ENM, 웨이브 등 한국 기업들이 잇달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내년께 영상 플랫폼으로 해외 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글로벌 기업의 공세가 거센 가운데 해외까지 뻗어가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잇달아 막대한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그 자신감의 근거는 뭘까.

이는 플랫폼 전쟁의 본질과 연결되는 문제다. 플랫폼 전쟁은 곧 대규모 지식재산권(IP) 전쟁이다. 이제까지 한국 기업들은 개별 콘텐츠, 즉 각각의 IP로 전투를 치러 왔다. 플랫폼 전쟁은 여기서 나아가 특출난 IP들을 총집결해 역대급 ‘어벤저스’를 결성하는 것과 같다. ‘빈센조’ ‘사랑의 불시착’ ‘신서유기’ ‘서복’ 등을 한데 넣어 OTT ‘티빙’을 만든 것을 떠올리면 된다.

여기서 가장 큰 자산인 개별 IP의 힘은 충분히 증명됐다. 넷플릭스를 통해 국내외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작품 다수는 K콘텐츠다. CJ ENM이 5년간 5조원을 투자하고, 웨이브가 2025년까지 1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은 그런 자신감의 반영이다. CJ ENM은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2000년 이후 만든 4854편의 IP, 꾸준히 확보해온 700여 명의 감독·작가 등 크리에이터의 힘을 강조했다. 오랜 시간 문화 사업을 해오면서 쌓아온 축적의 힘을 믿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들은 ‘연결’, 즉 IP 어벤저스를 만들어 하나의 큰 그릇에 담아내는 데 취약했지만 최근엔 달라지고 있다. 원작을 다양하게 활용한 ‘프랜차이즈 IP’ 성공 사례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오는 17일 방영될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를 비롯해 ‘응답하라’ ‘신서유기’ ‘대탈출’ 등 수많은 작품이 시리즈물과 파생 콘텐츠로 제작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IP를 OTT 사업에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CJ ENM은 디즈니처럼 콘텐츠-방송-OTT-테마파크 등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콘텐츠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IP로 온·오프라인과 국경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디즈니의 창업주 월트 디즈니가 1950년대에 사업을 구상하며 적은 메모는 아직도 자주 회자된다. 복잡한 선으로 연결된 이 메모는 캐릭터 사업, 테마파크 등 디즈니가 나아가야 할 사업 방향을 모두 담고 있다. 메모 가운데엔 ‘디즈니 스튜디오’가 적혀 있다. 재밌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사업의 중심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디즈니는 위기가 와도 이 점을 잊지 않고 IP를 더욱 강화하는 전략으로 ‘콘텐츠 왕국’을 건설했다.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IP의 제왕은 어디가 될까. 시장의 흐름이 그 어느 때보다 빨리 변화해 승자를 섣불리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IP 어벤저스’로 도전장을 내민 국내 기업들은 전 세계에 ‘K콘텐츠 왕국’을 세울 수 있을까.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앞서기 시작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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