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의 광고·마케팅 기상도] 창의성 영역까지 넘보는 인공지능
지금 우리네 일상생활은 물론이거니와 광고계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인공지능(AI)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인간의 창의성 영역은 넘보지 못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아니,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2016년 3월 이세돌이 알파고에 1승4패로 졌을 때도 놀라긴 했지만 인공지능이 바둑 규칙을 달달 외운 결과로 애써 해석하며 위로했다. 그런데 상상력과 창의성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은 실로 놀라울 정도다.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승리한 직후 일본 광고계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인간 크리에이터와 인공지능 크리에이터가 껌 브랜드 클로렛츠(Clorets) 민트탭의 광고를 제작해 창의성 대결을 펼쳤다. ‘상큼한 10분간’이라는 키워드로 각각 광고를 만들어 투표로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투표 결과 사람이 이겼지만 54 대 46이라는 근소한 차이였다. 2017년 KBS의 ‘명견만리’에서도 두 광고를 표결에 부쳤는데 이번엔 25표나 더 얻은 인공지능이 이겼다. 인공지능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베타(AI-CD β)’가 10년치 광고상 수상작을 분석해 창의적인 아이디어 발상을 한 것이다. 인간의 달 착륙에 비견할 만한 놀라운 사건이었다. 일본 광고회사 덴쓰에서는 인공지능 카피라이터 아이코(AICO)를 선보였다. 일본어로 ‘귀여운 여자아이’라는 뜻이다. 디지털 분야에 특화된 카피라이터 다이렉트 아이코(Direct AICO)도 광고회사에 입사했다. 중국 알리바바그룹 산하 디지털 플랫폼 알리마마에는 1초에 2만 줄의 광고 카피를 쓰는 인공지능 카피라이터가 입사했다.

인공지능 카피라이터는 먼저 방대한 자료를 학습한다. 제품 페이지에 링크를 삽입하고 카피의 어조를 선택한 다음 버튼을 누르면 인공지능 카피라이터가 순식간에 수만 개의 카피를 쏟아낸다. 경이로울 정도로 많은 물량인데 사람은 그중에서 최적의 카피를 골라 쓰면 된다. 인공지능은 아이디어가 생명이라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분야를 크게 변화시킬 듯하다.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설득 메시지의 타당성을 높일 것 같다. 나아가 인공지능은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광고 창작자들이 빠지기 쉬운 주관성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할 것 같다.

인간이 인공지능에 지배당할 것인지 함께 공존할 것인지에 관한 논쟁은 이제 무의미해졌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께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그 시점이 예상보다 빨라질 듯하다. 바둑계에 알파고가 있다면 광고계에는 인공지능 크리에이터와 카피라이터가 이미 활동하고 있다. 지니 로메티 IBM 최고경영자는 인공지능 시대엔 블루칼라도 화이트칼라도 아닌, ‘뉴 칼라’ 계층이 떠오른다고 했다. 뉴 칼라란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관리하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사람만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해내기 어렵거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을 인공지능에 맡기면 광고 업무에서 생산성이 향상될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빼앗아간 사람의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광고 기술이 기존의 광고와 마케팅 환경을 바꾸는 상황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력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또 인공지능에 의해 나타날 광고의 비윤리적 문제를 보완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상상력을 전제하지 않고 인공지능만 신뢰하는 것은 오만이며, 인간의 상상력만 신뢰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않는 것은 태만이다. 오만과 태만 사이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가치사슬을 정립하는 문제가 정말로 시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