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과천시장 주민소환이 '님비'?
지난해 ‘8·4 주택공급대책’에 정부과천청사 유휴부지에 임대주택을 포함한 4000가구를 공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거긴 아닌데…’ 싶었다. 2000년대 후반 기획재정부(당시 재정경제부)를 출입하던 시절 매일같이 출퇴근하던 기억을 떠올려보니 그랬다.

과천청사 유휴부지는 정부과천청사와 지하철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 사이에 있는 8만9000㎡짜리 네모반듯한 땅이다. 과천시 정중앙 노른자위에서 시민들의 쉼터로 활용돼 온 곳이다.

정부 '징발'에 희생될 뻔한 쉼터

과천시도 그런 구상을 갖고 있지만, 연고 없는 외지인이 보기에도 도시공원 역할을 해야 할 곳에 주택을 때려 넣겠다는 게 8·4 대책이었다. 급기야 상당수 과천시민이 들고일어나 김종천 과천시장(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를 성사시켰다.

돌이켜보면 ‘세금폭탄’, 재건축·재개발 규제 등 반(反)시장적 옥죄기에 골몰하던 문재인 정부가 “공급 부족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겠다”(문재인 대통령)며 8·4 대책을 마련한 것도 뜬금없었다. 청와대의 급작스러운 하명(下命)에 당황한 탓일까. 국토교통부가 급하게 끌어모아 8·4 대책에 포함시킨 공급 예정지 중에는 과천 유휴부지 같은 곳이 많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1만 가구를 짓기로 한 서울 용산정비창 부지다. 51만㎡ 규모의 이 땅은 2000년대 중반부터 개발이 추진되다가 2010년대 들어 좌절된 ‘용산국제업무지구’에서도 핵심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도시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서울을 넘어 한국의 랜드마크로 만드는 청사진 하에 개발하는 게 맞다”(서진형 한국부동산학회장)는 곳을 덜컥 ‘아파트 숲’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하니, 주민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반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바야흐로 ‘도시경쟁’의 시대다. 유엔에 따르면 2030년이 되면 전 세계 인구의 70% 이상이 도시에서 생활하게 될 전망이다. 인류를 호모 어버너스(Homo Urbanus·도시인)라고 부른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일본 모리기념재단의 ‘모리지수’, 컨설팅 회사 AT커니의 ‘글로벌 도시 보고서’ 등의 도시경쟁력 평가 척도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슈퍼스타 도시’들은 물가수준(집값)뿐 아니라 안전성(치안·재해), 편리성(교통·물류), 쾌적성(환경·녹지) 등의 매력도를 종합적으로 높이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집값 잡겠다’는 일념으로 경쟁력을 스스로 훼손시키는 ‘자해’를 하는 곳은 한국 외엔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부동산을 안정시킬 다른 방법이 없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재개발·재건축 ‘족쇄’ 풀기, 다주택자에 대한 터무니없는 양도세율 인하라는 공급, 혹은 매물 확대 해법을 놔두고 엉뚱한 처방을 고집했다. ‘정책 실패를 자인 못하겠다’는 아집이 아니라면 이해할 방도가 없다.

도시경쟁력, 안중에 없나

과천시민들이 지방자치법에 보장된 주민소환을 활용해 정부의 과천청사 유휴 부지 내 주택공급 방침을 좌절시킨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집값 떨어질 것을 우려한 님비”라고 매도한다. 동의하기 어렵다. 도리어 정부의 탁상행정에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될 뻔한 도시의 매력을 시민들이 나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지켜낸 성취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서울시민들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기간 10년간 헌 신발로 만든 조형물 ‘슈즈트리’, 도시재생사업지에 벽화 그리기 같은 그의 기괴한 취향을 제지 없이 놔뒀다. 그 결과는 세계적 도시 서울의 추락이었다. 과천은 서울과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