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아
오현아
법원의 지난 7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각하 판결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판결을 내린) 김양호 부장판사를 탄핵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은 하루 만에 참여 인원 20만 명을 넘어섰다. 30일 이내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국민청원은 정부의 공식 답변 대상이 된다.

법원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는 “국민 우롱하는 친일판결을 강력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9일 발표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 회의에서 “조선총독부 경성법원 소속 판사의 판결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고 재판부를 비난했다.

이처럼 들끓는 반응은 법원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이번 판결은 3년 전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시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 협정의 대상이 아니다”며 “일본제철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1인당 1억원씩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김 부장판사는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징용의 불법성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국내법적 법 해석”이라며 이를 180도 뒤집었다. 모든 판결이 다 똑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리가 이 정도로 흔들리면 재판받는 국민이 납득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선고기일까지 바꿔 쓸데없는 논란을 키웠다. 이번 선고는 원래 10일로 예정됐다가 재판부가 7일 오전 9시 “당일 선고를 진행한다”고 원고와 피고에 통보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선고 이후 “기자들의 전화를 받고 선고기일이 오늘로 바뀐 것을 알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법정의 평온과 안정 등 제반 사정을 고려했다”는 게 법원의 해명이지만, 사회적 주목도가 큰 재판이었던 만큼 굳이 억측을 불러올 일정 조정을 강행해야 했나 싶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판사가 소신에 따라 판결했다는 이유로 정치권까지 나서 ‘조선총독부 경성법원 소속 판사’ 운운하는 것은 정말 곤란하다. 법원 자체가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3년 전 있었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도 “다분히 국내 정치를 의식한 판결”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터다. 한 판사는 “대법원 판결을 하급심에서 뒤집었다는 이유로 판사가 비판받을 순 없다”며 “법리적으로 틀린 판결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헌법 103조에는 “법관이 헌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서 심리하도록 규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과도한 법원 흔들기는 오히려 여론과 정권 눈치보기를 심하게 해 법적 안정성(legal stability)만 훼손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