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초유의 '방탄인사' 해 놓고 사심 없다니
“(이번 검찰 인사에서) 사적인 건 단 1g도 고려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7일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사상 초유의 피고인 신분 서울중앙지검장을 고검장으로 승진시키고, 정부에 각을 세웠던 검사들은 모두 비(非)수사 한직으로 좌천시키는 ‘방탄인사’에 대한 자평이다.

물론 박 장관의 얘기가 맞을 수도 있다. 특정 검사와 자신의 친소관계 같은 개인적 인연은 이번 인사에서 고려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든다. ‘순전히 공적인 차원에서 이 지검장을 승진시키는 인사를 했다는 얘기인가. 박 장관에게 공적(公的)이란 대체 어떤 의미인가.’

검찰은 우리 사회 곳곳의 범죄를 수사하고 부패를 척결하는 국가 최고 법집행기관이다. 박 장관이 검찰의 이런 공적 역할을 충분히 고려했다면, 이번 인사는 우리 사회 곳곳의 범죄와 권력자가 얽힌 각종 부패를 깨끗이 청소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이런 의문이 드는 건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당장 현 정부를 겨냥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팀에 대한 인사만 봐도 그렇다. 이 사건 피고인으로 재판을 앞두고 있는 이성윤 지검장은 승진했다.

사건을 맡고 있는 수원지검의 수장에는 ‘친정부 성향’으로 분류되는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임명됐다. 수원고검장에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황제휴가’ 사건을 뭉갰다”는 의혹을 받는 김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앉게 됐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기존 수원지검 수사팀이 요청해둔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대한 기소 결재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받았을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후배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외풍을 막아주는 선배와 정치권의 ‘편 가르기’에도 휘둘리지 않고 꿋꿋이 범죄 혐의를 밝혀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후배. 이런 검사들이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또다시 권력을 겨냥해야 할 때가 오더라도 검사들은 주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인사가 주는 메시지는 어떤가. 추 전 장관이 앞장선 이른바 ‘검찰개혁’이 진행되기 전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지난 5월 신임 검사 70여 명이 임용된 자리에서 박 장관은 “정의란 외부의 잘못된 유인과 압력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며칠 전 신임 검사 한 명은 기자에게 “취업사기를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권 입맛에 맞는 수사만 골라 하고 권력자 비위는 무조건 덮어서 승진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임관식에 참석한 검사들이 몇이나 있겠는가. 박 장관에게 묻고 싶다. 이런 인사를 해놓고 신임 검사들에게 과연 떳떳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