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일본, 도심 요충지에 충전소
한국은 겹규제·주민 반발에 막혀
수소경제 가로막는 장벽 없애야

이건호 편집국 부국장
[이건호 칼럼] '수소차 보유 1위' 한국, 충전소는 꼴찌

“우리는 여전히 충전소에 목마르다.”

현대자동차 연료전지사업부장인 김세훈 부사장은 지난 5월 26일 서울 용산드래곤시티에서 ‘수소경제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스트롱코리아 포럼 2021’에 강연자로 나와 이렇게 말했다. 현대차가 수소차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충전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은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분야에서는 패스트 팔로어였지만, 수소차에선 퍼스트 무버를 자처한다. 세계 최초로 수소차 양산체제를 갖추고 수소법(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을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28일 수소차(넥쏘)를 직접 운전해 퇴근한 뒤 “탄소중립사회로 가기 위해 ‘달리는 공기청정기’인 수소차가 더 많이 이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소차를 보유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주행 중인 수소차 약 3만7400대 중 33%(1만2439대)가 한국에 있다. 미국은 1만68대(27%), 중국은 7227대(19%), 일본은 5185대(14%), 독일은 738대(2%)다.

하지만 수소차 보급 확산에 필수적인 충전 인프라는 주요국 중 꼴찌 수준이다. 한국의 수소충전소는 69기로, 전 세계 충전소(533기)의 13%다. 한국 충전소 1기당 수소차는 180대로 일본(38대), 중국(24대), 독일(9대) 등에 뒤져 있다. 한국보다 수소차 출시가 1년 늦었던 일본에서는 도쿄 시내에 충전소들이 들어섰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택시기사들이 도심 한복판 충전소에서 직접 수소를 충전한다.

한국에선 그동안 수소충전소를 위험시설로 보고 강력한 입지 규제를 해왔다. 유치원, 대학 등 학교 부지로부터 200m 밖에 설치해야 한다(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 공동주택으로부터 25m의 거리를 둬야 한다(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대형마트 등 상업시설 내 충전소 설치도 자유롭지 않다(국토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여기에 지역 주민 반발까지 더하면 겹겹의 규제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셈이다.

현대차가 수소차 넥쏘를 개발할 때 용광로에 수소연료탱크를 넣거나 총알을 관통시키는 등 다양한 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검증했지만, 여전히 ‘폭발 위험이 크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이 퍼져 있다. 유럽에선 안전관리 책임자가 원격 모니터링으로 충전소를 관리할 수 있지만, 한국은 사람이 상주해야 한다(고압가스안전관리법). 유럽에서 허용된 ‘운전자 셀프 충전’이 한국에선 금지돼 있다.

생산 원가도 비싸다. 수소 생산에 사용하는 천연가스에 산업용 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원가를 낮추기 위해 세율이 낮은 발전용 세율을 적용하거나 면세해 달라는 게 관련 업계의 요청이다. 그나마 충전소를 지을 때 환경부 승인을 받으면 다른 법률 인허가 절차를 모두 획득한 것으로 간주하는 개정 대기환경보전법이 올 7월 시행을 앞둔 점은 다행스럽지만, 다른 국가에 비하면 한참 늦었다.

국내 기업 중 수소연료전지 관련 원천 기술을 보유한 곳은 드물다. 세계 수소경제 관련 특허 출원 중 한국의 비중은 8.4%로, 일본의 30%에 비해 격차가 크다. 충전소 짓는 데 필요한 핵심 부품도 대부분 외국에서 들여다 쓴다.

무엇보다 그린수소 생산 능력을 갖추려면 소형모듈원자로(SMR)가 필수적인데, 원전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다. SMR은 친환경성과 안정성을 갖춰 수소경제 시대의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수소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각국 주요 기업도 수소 전쟁에 뛰어들었다.

내연기관 시대의 석유처럼 수소를 수입에만 의존한다면 수소경제 시대를 선도하기 힘들다. 수소경제 구현 없이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도 불가능하다. 과감한 규제 혁파와 에너지정책의 대전환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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