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진료시간 탓 배려 부족한 병원 환경
환자도 함께하는 재활병동 '가족회의'처럼
소통하고 공감하는 의료문화 확산되길

방문석 < 국립교통재활병원 원장 >
[방문석의 메디토크] 싸늘한 의사, 공감할 줄 아는 의사

말기암으로 투병 중인 한 유명인의 가족 환자에게 희망이 없음을 알리고 불필요한 치료에 매달리지 말라고 냉정하게 얘기하는 한국의 ‘싸늘한 의사들’ 이야기와 3분 진료의 우리나라 진료 현실이 새삼 화제에 올랐다. 우리나라 의료 수준은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교민들은 한국의 의료 접근성과 비용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선진국인 미국, 캐나다 교민이 한국에 와서 수술 등의 치료를 받고 돌아가는 사례도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병원은 항상 설명이 부족하고, 빈말이라도 친절하지 않은 싸늘한 의사에 대한 환자들의 불만이 크다. 바쁜 진료 시간에 대기 중인 다른 환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것저것 계속 물어보는 환자에게 난감해하는 의사의 심정이 교차되고 있다. 암이나 중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공간에서,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의사의 따듯한 배려 속에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진료실의 분위기와 부족한 진료 시간으로는 환자들의 이런 요구를 필요한 만큼 만족시키기 어렵다. 수준 높은 진료는 이뤄지지만 환자와 의사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공감과 배려가 결여되고 있는 것이다.

암환자 못지않게 치료 과정에 공감이 필요한 환자는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중증 장애를 갖고 재활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다. 재활병동에 입원하면 다른 진료과에서는 없는 환자 가족, 의료진이 함께하는 ‘가족회의’를 하게 된다. 환자 및 가족들과 만나기 전에 재활 치료에 참여하는 의사, 치료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미리 모여 환자 상태와 치료 계획에 대해 사전 회의를 한 뒤 가족회의를 시작하게 된다. 암 환자들이 겪는 것과 비슷하게, 마치 앞으로의 일생에 대한 선고와 같은 예후에 관한 설명과 치료 계획을 듣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차분한 회의실에서 자신을 치료하는 모든 치료진과 가족이 함께하고 상호 대화하는 것이 큰 차이다. 재활 치료 후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미래와 가족의 역할, 사회로의 복귀, 사회보장제도 등의 정보를 차분하고 정확하게 듣게 되는 많은 환자와 가족들은 완치되지 않고 장애가 남는다는 현실을 수용하기 어려워한다. 좌절해 눈물을 흘리고, 일시적인 우울증에 빠지고, 삶의 의욕을 잃기도 한다. 이 과정을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이겨내는 것도 재활 치료의 큰 부분이다.

사고나 질병의 고비를 넘겨 살아 있기는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함 속에 지내다가 재활병동으로 옮겨져 앞으로 걷지도 못하고 팔다리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란 선고를 받는 중증 장애 환자의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조차 힘들 것이다. 재활 치료에 참여하는 의료진도 한자리에서 환자의 좌절과 슬픔, 상실감을 인정하고 공감하면서 환자가 동의하고 수용할 만큼의 치료 계획과 공통의 목표를 수립해 재활 치료를 진행한다. 환자 본인은 물론이고 의료진에게도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경우도 있지만 중요하고 보람 있는 과정이다. 의료진의 지식과 기술 못지않게 공감 능력이 가장 필요한 순간이다.

고가의 장비를 쓰는 시술이나 수술도 아니면서 많은 전문 의료진이 한 장소에 모여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이런 과정에 건강보험 등의 적절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는다. 병원 입장에서는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과정인데 재활 치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과정이다. 최근 정부에서 시행하는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사업’의 필수 진료 항목에 가족면담회의가 포함된 것은 우리 의료제도의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가 나쁠 수밖에 없는 환자의 처지는 동정이 아니라 공감하려는 의사의 노력이 필요하다. 의대 교육과정과 국가고시에 환자와의 소통이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소통과 공감은 교육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프라이버시도 보장받기 어려운 3분 진료의 현장이 아니라 공감이 이뤄질 수 있는 의료진의 충분한 준비와 시간과 장소 그리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환자의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의료기술 못지않게 환자와 의사 간에 공감이 이뤄지는 따듯한 의료 환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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