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의 통찰과 전망] 디지털 피버팅, 아날로그 기업의 생존전략
2020년 디지털 전환의 와중에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충격까지 가세하면서 산업지형도가 급변했다. 이는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12일자에 보도한 지난해 우리나라 500대 기업 순위 변화에서 확인된다. 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중후장대형 아날로그 기업은 부진하고 경박단소형 디지털 기업이 약진했다. 유통플랫폼 사업자인 배달의민족, 마켓컬리와 신세계 계열 온라인 유통기업 SSG닷컴이 500대 기업에 신규 진입했다. 쿠팡은 매출이 두 배로 증가하며 50대 기업이 됐다.

코로나19는 아날로그 세계에 시나브로 스며들던 디지털 전환에 불을 붙였다. 경제산업 관점에서 코로나는 일시적 충격이고 본질은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다. 영역과 업종을 불문하고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디지털 트렌드에 대한 아날로그 기업들의 적극적 대응으로 성공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아날로그 기업에 디지털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런 상황에서 아날로그 기업들은 기존 사업의 연장선이 아니라 ‘디지털 피버팅(digital pivoting)’이라는 방향 전환으로 접근해야 한다.

아날로그 기업은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생존 자체가 불투명하다. 아날로그 방식에 기반한 기술은 급속히 진부화되고 오프라인 시장은 위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사업을 디지털 관점에서 재해석·재정립하는 사업 모델 전환이 필수불가결하다. 최근 스타트업들의 사업 방향 전환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피버팅의 개념이다. 당초 피버팅은 농구에서 공을 잡은 선수가 상대선수를 피하기 위해 한 발은 그대로 두고 다른 발을 움직여 방향을 전환하는 동작을 의미하는 스포츠 용어였다.

아날로그 기업의 디지털 피버팅은 ‘업의 본질’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 현재 시장경제에서 존재하는 모든 사업은 호모 사피엔스의 목표함수인 ‘생존과 번식’에서 파생되는 ‘건강, 가족, 풍요, 편리, 행복’ 등의 가치를 제공해 존재한다. 업이란 이런 가치를, 시장을 매개체로, 경쟁을 통해 비용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이다. 현재의 아날로그 기업은 이런 가치를 만들어 전달하기에 존재하고 있다. 이는 시대 변화, 기술 발전과 무관한 불변의 명제다.

디지털 피버팅이란 ‘업의 본질’은 유지하되 가치를 만들고 전달하는 방식의 변화다. 아날로그 오프라인 유통기업의 대표주자 월마트는 이런 점에서 귀감이 된다. 미국의 디지털 기술 전문매체 패스트컴퍼니는 2020년 인공지능(AI) 분야의 혁신을 선도한 10개 기업을 선정했다. 창업 7년 이내인 신생기업 7개사와 반도체 설계 분야의 ARM(1985년), 컴퓨터 그래픽 분야 어도비(1982년)와 1962년 설립된 60년 역사의 월마트가 포함됐다. 아날로그 사업의 본질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면서 AI 부문 투자를 집중했기 때문이다. 월마트의 2020년 온라인 매출은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아날로그 오프라인 매장과 디지털 온라인 쇼핑을 융합한 옴니채널이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은 순식간에 돌덩이처럼 무거운 저가치 유산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아날로그 사업의 본질을 재해석하고 디지털 기술이라는 도구와 접목하는 디지털 피버팅은 돌덩이를 금덩이로 만든다. 둔중한 돌덩이 아날로그 사업이 디지털 피버팅을 통해 경쾌한 금덩이 아날로그·디지털 융합사업으로 변신한다. 이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현실에서 전개되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소위 전형적인 아날로그 서비스 산업으로 치부됐던 음식배달, 식품유통, 정육점, 세탁소, 주차장이 디지털 기술과 접목돼 재탄생하고 있다. 또 소규모로 분산된 아날로그 자영업 개념이었던 중고거래, 숙박, 용달 등이 플랫폼 구조로 연결되면서 고성장 첨단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대부분은 아날로그 방식 사업이 기본이다. 디지털 전환의 총론에는 공감하지만 각론에서는 혼돈스러운 경우가 대다수다. 위기는 크게 보이고 기회는 작게 보이지만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날로그 기업들이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는 디지털 피버팅에 성공하는 경우에 성과와 반향은 더욱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