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전의 경영과 과학] '화폐의 脫중앙화'란 낭만적인 꿈
우리는 가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말에 솔깃해진다. 문명을 되돌리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그러나 어린아이에게 “동굴에서 살래, 아파트에서 살래”라고 물으며 체험하게 해 보면 아이는 아파트를 선택할 것이다. 동굴은 춥고, 어두우며, 습기 차고, 벌레가 있다. 우리는 자연을 극복하고 아파트를 선택해 왔다. 자연의 삶을 노래한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완전한 자급자족의 삶을 누리지 못했다. 빨래는 어머니가 해줬으며, 끼니도 이웃의 도움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낭만적인 꿈은 부자연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다. 올해 오스카상 감독상·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노매드랜드’는 집에 정착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다. 방랑하며 채집과 수렵을 하던 시대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자연을 가끔 즐기는 것은 좋지만, 집 없이 평생을 사는 것은 피곤하다. 인류가 정착하고, 도시를 건설한 것은 진화적 행동이고, 발전이었으며, 진보였다. 인류의 역사는 자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온 역사다.

에덴동산의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몸을 보호하고 꾸미는 옷과 장식을 개발하는 것이 진보다. 의상학, 건축학, 식품영양학은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더 멀리 떠나게 하는 진보적 학문이다. 더 나아가 현실 세계에 증강현실을 결합하는 메타버스를 개발하고, 메타버스에서 활동하는 나의 아바타, ‘부캐’를 만드는 것이 차라리 진보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화폐의 탈중앙화라는 매력적 구호와 함께 등장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나온 지 10여 년이 지났다. 냉정하게 보면, 화폐의 탈중앙화는 진보가 아니다. 인류의 시초에는 화폐가 없었다. 인류는 화폐를 개발하게 됐고, 거래 당사자 간 분쟁을 줄이기 위해 표준화했을 것이며, 권위 있는 기구가 보증하는 방식을 생각했을 것이다. 권위 기구는 부족장이 지배하다, 왕이 지배하게 됐으며, 현대엔 국민이 주인이 돼 법치와 선거로 관리하는 민주 공화국가로 진보해 왔다. 민주화는 탈중앙화된 무정부국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직화하는 것이다. 자연의 약육강식 상태에서 벗어나 약자를 보호하고, 구성원의 복지, 조직의 성과를 창출하는 원리를 연구해 온 것이 정치학, 행정학, 경영학이다.

공산주의는 어떤가? ‘처음으로 돌아가자’ ‘부의 분배를 원점으로 돌리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나게 하자’는 구호는 매력적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도 노력하지 않는 결과가 도출됐고, 소수의 공산당원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대다수의 민중은 억압과 가난에 짓눌리게 됐다. 그 결과 대부분의 공산국가는 무너지고 민주화됐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탈중앙화도 결국은 자연으로,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돌, 조개, 동전, 지폐로 진화해 온 화폐가 디지털 코인으로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혁신일 수 있으나, 그것이 탈중앙화를 위한 암호화폐여야 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가설이기는 하나 진보가 아니다. 사회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의 법칙이 약육강식이라면 인간 사회의 제도는 그래서는 안 된다. 탈중앙화는 진보가 아니다.

비트코인을 창시한 나카모토 사토시는 잘못이 없다. 그는 생시몽과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다. 생시몽 이후 오랫동안 공산주의의 유령은 떠돌았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의 암호화폐 광풍과 유사하다. 사람 같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시도 역시 진보적이지 않다. 사람과는 달리 더 합리적인, 사람을 위한, 인간과 가깝지 않은 인공 지능체를 개발하는 것이 진보다. 자연의 하나인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 탈중앙화 암호화폐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구호와 비슷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지역화폐도 비슷한 운명을 갖는다. 교환범위가 넓은 화폐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화폐 진보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 진보의 방향을 거스르는 지역화폐는 이름만 화폐일 뿐, 지역 납세자의 희생 없이는 유지되지 못하는 정책일 뿐이다.

이경전 < 경희대 경영학 &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