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행복지수와 삶의 질

‘국민 행복’은 특정 정치세력의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력 대선후보였던 2016년 작은 불교국가 부탄에 들러 이 나라 ‘행복 정책’에 깊이 감명받았고, ‘정부가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면 정부의 존재 가치가 없다’는 부탄 법전의 문구를 소셜미디어에 인용해 화제가 됐다. 전임 박근혜 정부도 ‘국민 행복’을 국정목표로 내세우고, 국민행복지수까지 만들려고 했었다. 그런데도 문 정부가 ‘국민 행복’을 더 강조한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정부가 모든 걸 책임져주겠다는 식으로 장담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국민에게 그런 심상(心象)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요즘 발표되는 국가별 행복도와 삶의 질 순위는 적지 않은 실망감을 준다. 유엔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국내총생산, 근로시간, 미세먼지 농도, 기대수명, 노인빈곤율 등으로 평가한 국가행복지수(2018~2020년)에서 한국이 5.85점(10점 만점)을 받아 OECD 37개 회원국 중 35위에 그쳤다. 밑에는 그리스와 터키뿐이다. 앞서 글로벌 국가·도시 비교사이트인 넘베오가 발표한 ‘삶의 질’ 지수에서 한국이 평가 대상 83개국 중 42위였다.

행복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기 마련이다. 아무리 부자여도 더 큰 부자를 보면 불행하다고 여기는 게 사람이다. 그런 국민의 행복을 국가 차원에서 순식간에 끌어올릴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잘살고 못사는 경제적 요소만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생활수준이 프랑스 루이14세 때 베르사유궁전에 거주하는 왕족들보다 낫다지만, 그게 행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빈곤 문제도 마찬가지다. 잘사는 나라여도 “나는 가난하다”는 사람이 10%를 넘는다. 이런 상대적 빈곤은 수위가 변해도 항상 물속에 잠기는 배의 ‘흘수’와도 같다.

그런 점에서 ‘국민 모두의 행복’은 정치인들의 수사(修辭)일 뿐이다. 이를 선거구호로 내걸어 현혹하고, 이에 혹해 믿는 국민이 있다면 시간낭비일 뿐이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미세먼지나 교통체증 해결에 집중하는 게 낫다.

개개인의 행복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 폭넓은 인간관계, 삶의 속도 늦추기, 이타적 행동, 운동·취미생활에 더 크게 좌우된다. 행복의 40%는 심리적으로 관리 가능하다는 학자들 주장도 있다. 도스토옙스키도 “인간이 불행한 것은 자기가 현재 행복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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